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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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삼성화재 소속으로 ‘현대캐피탈 킬러’로 군림했던 레오, 이제는 ‘현대캐피탈맨’으로 삼성화재 격침에 ‘선봉장’이 되다

프로배구 남녀를 통틀어 최고의 라이벌을 손꼽으라면 단연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를 꼽을 수 있다. 삼성화재가 프로 출범 전 슈퍼리그 시절인 1995년 창단해 김세진(現 KOVO 경기운영본부장), 신진식(前 삼성화재 감독), 김상우(現 삼성화재 감독) 등 대어급 신인들을 싹쓸이한 뒤 참가한 첫 대회부터 우승을 독식했고, 현대캐피탈은 이 때문에 ‘만년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프로 출범 후에도 두 팀의 라이벌 관계는 지속됐다. 프로 원년이었던 2005 V리그에선 삼성화재가 우승하면서 슈퍼리그 8연패를 합쳐 9연패의 위업을 쌓았으나 현대캐피탈이 2005~2006, 2006~2007시즌 2연패를 차지하며 삼성화재의 천하를 무너뜨렸다. 심기일전한 삼성화재는 2007~2008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챔프전 7연패를 차지해버린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팀의 관계는 라이벌이긴 하지만, 삼성화재의 일방적 우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삼성화재의 현대캐피탈에 대한 일방적 우세를 마지막까지 이끈 선수가 있다. V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꼽을 때 단연 첫 손에 뽑힐 선수,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다.

 

2012~2013시즌 삼성화재의 외국인 선수로 V리그에 첫 발을 디딘 레오는 입단 당시만 해도 키에 비해 너무 마른 몸으로 우려를 샀으나 데뷔전부터 공격 점유율 61.95%, 공격 성공률 71.43%로 51점을 몰아치며 화려한 신고식을 보여줬다. 이후 세 시즌간 V리그는 말 그대로 레오 천하였다. 레오는 2014~2015시즌까지 뛰면서 정규리그 MVP 3연패를 달성했고, 2012~2013, 2013~2014 챔프전 MVP도 독식했다. 다만 마지막 2014~2015 챔프전에선 같은 쿠바 출신의 괴물 로버트랜디 시몬이 이끄는 OK저축은행에게 3전 전패로 무너졌다. ‘삼성화재 왕조’의 몰락을 알린 패배였다.

 

레오가 삼성화재에서 뛰던 시절 현대캐피탈과의 맞대결 성적은 2012~2013시즌 5승1패, 2013~2014 3승2패, 2014~2015 5승1패, 도합 13승4패의 압도적 우세로 치러졌다.

 

레오가 V리그를 떠난 이후 삼성화재의 V리그 지배력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는 곧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라이벌 관계도 역전되는 것을 의미했다.

 

2015~2016시즌 현대캐피탈의 5승1패 우세를 시작으로 2022~2023시즌까지 8년 연속 최소 동률(2017~2018시즌 3승3패) 혹은 현대캐피탈의 우세가 진행됐다. 2022~2023시즌엔 현대캐피탈이 사상 최초로 6전 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2016~2017시즌부터 두 팀의 맞대결을 ‘V-클래식 매치’로 명명했는데, 이를 기준으로 해도 현대캐피탈이 31승16패의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다. 다만 2023~2024시즌은 삼성화재가 4승2패로 9년 만에 다시 V-클래식 매치의 우세를 점했다.

 

10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선 올 시즌 첫 V-클래식매치가 열렸다. 10여년 전 삼성화재 소속으로 ‘현대캐피탈 킬러’의 위용을 뽐냈던 레오는 이제는 현대캐피탈의 유니폼을 입고 과거 친정팀을 상대했다. 레오는 지난 세 시즌 간 OK저축은행 소속으로 뛰었지만, OK저축은행이 올 시즌을 앞두고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했고 다시 트라이아웃 시장에 나왔다. 2순위 지명권을 얻은 현대캐피탈이 레오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결과는? 현대캐피탈의 세트 스코어 3-0 완승이었다. 레오는 팀 공격의 44.71%를 책임지면서 60.53%의 공격 성공률로 23점을 몰아쳤다. 리시브 효율도 44.44%(9/18, 범실 1개)로 올 시즌 처음으로 40%를 넘겼다. 공격과 수비에서 레오가 만점 활약을 펼치면서 현대캐피탈의 경기력은 올 시즌 들어 가장 빼어났다.

 

레오의 아웃사이드 히터 파트너 허수봉도 리시브 효율 53.85%(7/13), 공격 성공률 59.09%로 ‘쌍 50%’의 활약으로 17점을 몰아쳤다. 레오와 허수봉 둘 중 하나가 항상 전위에 위치하면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뽐낸 게 인상적이었다.

 

개막 4연승을 달리다 지난 6일 한국전력전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패해 무패행진이 끊겼던 현대캐피탈은 이날 승리를 통해 승점 3을 보태며 승점 14(5승1패)가 됐다. 2위 한국전력(승점 11, 5승1패), 3위 대한항공(승점 11, 3승3패)와 승점 3 차이로 1라운드를 선두로 마친 현대캐피탈이다.

 

반면 삼성화재에겐 고민을 남긴 경기였다. 외국인 선수 그로즈다노프(불가리아)가 공격 성공률 56.76%를 기록하며 지난달 22일 KB손해보험전(53.49%) 이후 처음으로 공격 성공률 50%를 넘기며 맹활약했으나 그간 부진한 그로즈다노프 대신 에이스 역할을 해주던 파즐리(이란)가 공격 성공률 42.86%에 그치면서 10득점으로 부진했다. 두 선수가 동반 50%를 해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삼성화재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