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 외교사에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행사 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함께 천안문 위에서 열병식을 참관하던 모습은 국내 우파는 물론 미국 워싱턴 조야까지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는 ‘중국 경사(傾斜)론’이 몰아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불과 한 달 뒤 미국을 방문해 국방부(펜타곤)에서 의장대 공식 사열을 받으며 이런 우려를 불식했다. 의장대 사열과 천안문 열병식 장면이 교차하면서 중립외교에 대한 의지로 해석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하는 모습을 보며 중국 경사론을 걱정했던 국민은 안심하게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 대통령 지지율이 화두가 된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과거 김영삼·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취임 중 지지율 10%대를 경험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이 가장 극적이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인 2006년 4분기 12%대의 최악 지지율을 나타냈다. 이후 2007년 2분기에 24%대를 기록하며 회복세를 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것이 지지율 상승의 모멘텀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 철수 등 임기 중 미 행정부와 적잖은 갈등을 빚었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만큼은 정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FTA 타결이었다. 지지기반인 노조·농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백년대계를 내세우며 이를 관철했고, 국내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 ‘차기 대권 주자’ 영킨 주지사…“극단의 정치 극복” 공감대
내년 1월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복귀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른바 ‘트럼프 시대’를 예고하면서 “외교의 시대는 가고 거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인사와 강력한 거래 등 독특한 외교 방식을 꼬집은 표현이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을 두고 전면 교체론이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적군과 아군, 이념과 종교를 따지지 않는 경기도식 외교가 물밑에서 회자되고 있다. 미 대선 한복판을 다녀온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트럼프 정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핵심 인사들을 미리 만난 덕분이다.
일주일간의 미국 워싱턴·뉴욕 출장길에 김 지사는 동행기자단과 아침 식사를 하며 “수박 겉핥기와 같은 형식적 만남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가까운 우의와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의도한 건 아니지만 민주당 차기 대권 주자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나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지사를 만났고 공화당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도 만났다”며 “어느 구름에 비 내릴 줄 알겠느냐. 모두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합종연횡 행보는 미 대선 이후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미국 출장길에 만난 글렌 영킨 버지니아주지사는 세계 3대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의 CEO 출신으로,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원 연설에 나서 ‘진골’ 보수 정치인으로 불린다.
영킨 주지사는 당시 연설에서 “이 단결의 순간에 차기 대통령인 트럼프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미 상무장관 발탁 1순위로 꼽힌다.
이런 영킨의 이력 가운데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칼라일 그룹 근무다. 이 회사는 방산 투자 분야에서 두각을 보일 만큼 탄탄한 정치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업계 최고의 정보력을 갖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중심지인 워싱턴DC에 본사가 있는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등이 이 회사에 근무한 바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과 영킨 주지사 역시 칼라일의 파트너급 임원 출신이다.
김 지사는 영킨 주지사와 주로 스타트업과 바이오 등 경제 분야의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대화 말미에 영킨 주지사는 김 지사를 향해 ‘극단의 정치’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신과 내가 해야 할 일은 극단의 정치로 갈라진 국민이 선거 이후 화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얼핏 극우로 보이는 영킨 주지사가 중도색이 강한 김 지사와 통했다는 뜻이다.
◆ ‘트럼프 경쟁자’ 디샌티스 주지사…경제협력·관계 맺기
김 지사는 공화당 내 ‘트럼프의 라이벌’로 불리는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와도 만났다. 올해 4월 한국을 방문한 디샌티스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혁신 동맹을 제안했다. 당시 대화는 바이오, 태양광, 항공우주 등 전략산업에 대한 협력이 주제였지만 김 지사가 호텔까지 직접 찾아가 디샌티스를 만난 건 ‘관계 맺기’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을 앞둔 시점으로 정치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대선보다 차기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디샌티스 주지사는 플로리다와 경기도의 국제무역, 교류협력 확대를 약속한 상태다.
미 대선과는 관련이 없지만 김 지사는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허리펑(何立峰) 중국공산당 정치국위원 겸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이목을 끌었다. 허리펑은 중국 정부의 경제·금융 정책을 조율하는 최고위급 책임자로, 시진핑 주석의 경제 분야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유럽 출장 말미인 지난 2일 독일에선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만난 화제를 모았다. 합종연횡 행보의 백미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달 15일과 25일 각각 공직선거법, 위증교사 1심 선고를 앞둔 가운데 당내 대권 주자급 인사로 꼽히는 두 사람이 ‘비밀스럽게’ 조우한 때문이다.
경기도는 입장문에서 “김 지사는 지난 1일 네덜란드 순방을 마친 뒤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공식 초청을 받고 베를린으로 이동해 현지에서 정책 간담회를 했다”며 “간담회가 끝난 이후 독일 현지에 체류 중인 김경수 전 지사와 계획에 없던 자연스러운 만남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궁금증을 키울 따름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 박탈형이 내려지면 당내에서 대안 세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얘기가 도는 만큼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한편, 김 지사는 이달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 정부는 편식·이념외교에서 국익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좋든 싫든 새로운 판이 짜이고 있다”는 ‘트럼프 시대’에 관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미국과 맞닥뜨려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여, 적대적 남북 관계를 지속하다가는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