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견제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관측되는 ‘트럼프 2기’ 시대에 한국은 경제와 안보 모두 놓치지 않기 위해 고도의 외교적 역량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관세 폭탄’으로 요약되는 트럼프 당선인의 대중 견제 모드하에서 국제사회 속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부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대학원)는 11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미국 새 행정부의 대중 정책에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핵심 무기인 반도체를 한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국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면 보조금을 준다는 등 혜택이 있었는데 트럼프 시대에 이는 없어지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반도체 생산량 40%를 중국에 팔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동시에 이는 중국에도 좋을 것이 없다. 강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한국 반도체 기업이 힘들어지고, 중국도 득이 없다는 점을 한국이 양측에 분명하게 전달해야 할 것”이라며 가중되는 한국의 부담을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미국의 새 행정부가) 중국에 대해 여러 무역장벽을 높이려고 한국에도 반도체 수출 등을 규제해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차전지도 전략 품목으로 지정되면 중국과의 협력에 규제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대중국 무역·투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응 전략으로는 미·중 각각과 한국이 거래할 요소를 분명히 찾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북미유럽연구부)는 “미국과는 실리를 앞세워 함께 움직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당선인 신분인 트럼프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바로 조선업 같은 키워드를 구체적으로 꺼낸 것이 매우 노련하고 인상적이었다”며 “이를 힌트 삼아 실용적으로 한·미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접근법을 통해 가치외교보다는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으로 부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최근 중국의 한국인 비자 면제, 한·중 고위급 회담 재개 등 한국은 올해 들어 중국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며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 시대가 오고, 미국 우선주의로 한·미 간 틈이 생길 것을 중국은 파고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트럼프 주변의 인재망을 공략해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미국이 한국을 압박으로 일관하지 않도록 잘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중국학)는 “경제 안보 분야에서 미국이 소위 말하는 디커플링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선으로 가게 되면 우리에게 영향이 많을 것”이라며 “우리는 제조·생산국으로서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관세 부분 등에서 중국산 부품, 재료 원자재 함유량에 따라 우리가 영향받을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주 교수는 “우리 입장에선 원료나 원자재 함유량 면에서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구조가 있고, 미국은 아직 대안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가 거래를 잘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중국과의 협상 공간을 늘려가는 것이 과제다.
중국은 반도체 부문에서 한국을 매우 필요로 하고, 그 물꼬를 틀기 위해 한국과의 산업협력을 모색해왔다고 주 교수는 설명했다. 주 교수는 “중국 경제가 망한다면 이는 전 세계적 불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의 중재적 역할도 필요하다”며 “중국 역시 우리에게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