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사람이 전쟁의 참혹함을 이해한 전쟁.’ SF소설 ‘우주전쟁’의 저자 허버트 조지 웰스가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남긴 말이다. 그는 세계대전에 큰 충격을 받고, 인류를 향해 경고했다. ‘인류가 전쟁을 종말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종말시킬 것이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어느 전쟁보다도 반인륜적이고 1000만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만든 광기의 역사다.
1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흉터는 당시 활동한 작곡가들에게도 남아 있다. 일반인들보다 표현력이 월등히 뛰어난 예술가들은 그 누구보다도 비극을 선명하게 전달했다. 바로 작품을 통해서였다. 전쟁이란 과연 작곡가들에게 무엇이었는지 작품을 통해 이야기했고, 전쟁의 상처는 작품 곳곳에 흉터가 되어 남았다. 특히 프랑스의 걸출한 두 작곡가의 작품에서 전쟁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 음악을 이끌었던 클로드 드뷔시(1862∼1918)와 모리스 라벨(1875∼1937)이다.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음악들이 만들어졌다.
먼저 클로드 드뷔시는 음악으로 전쟁에 저항했다. 애국심이 유난히 강했던 드뷔시는 참전까지도 고려했지만, 직장암을 진단받은 터라 전쟁에 직접 나설 순 없었다. 대신 음악으로 맞섰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를 떠나 교외에 머물고 있었었는데, 그곳에서 야심 찬 작품을 계획한다. 제목도 ‘프랑스 전통에 의한 6곡의 소나타’였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주요 악기들을 통해 짓밟힌 프랑스 정신을 복원하려고 했다.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어도, 300만 독일군도 이 프랑스의 유산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당당히 증명하고 싶었다.’ 드뷔시가 남긴 편지는 그의 결심이 얼마나 비장했는지 알려준다.
안타깝게도 드뷔시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던 직장암이 더욱 악화하였기 때문이다. 생명이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프랑스다운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작곡에 매진했으나, 여섯 곡 중 세 곡만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의 드뷔시 음악과는 달리 직접적이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음악들이었다. 모호함과 은유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던 드뷔시가 작품으로 온 힘을 다해 포효했다. 이것이 드뷔시의 마지막 예술세계였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음악이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게도 세계대전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전쟁은 그의 예술세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특히 라벨은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해, 전쟁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봤다. 그가 배치된 곳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이 일어난 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이었다.
전쟁 직후 그는 아주 짧은 한편의 작품을 남긴다. 작품의 제목은 ‘프론티스피스’. 프랑스어로 큰 건물의 ‘정면’이나, 책의 ‘표제’를 뜻하는 말이다. 2분 남짓한 이 피아노 작품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 음들은 서로 섞이지 않고, 각자 할 말만 하다가 마지막 순간엔 모든 것이 조용해지며 소멸한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전쟁의 공포, 그리고 그 후 찾아오는 적막은 아니었을까? 라벨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세계대전 이후 라벨은 창작활동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그의 작품 어딘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라벨의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 ‘볼레로’도 그렇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작품을 끝없이 쌓아 올리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붕괴시켜버리며 끝을 맺는다.
전쟁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단지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거다. 장소만 바뀌어 왔을 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원자폭탄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나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같은 상처 가득한 음악들이 등장했고, 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에선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가 작품 ‘기도’를 통해 전쟁의 비극이 더 커지지 않기만을 희망하고 있다. 상처와 흉터는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