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윤미향 임기 끝나고 의원 상실형, 이러니 사법 불신 커지는 것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전 의원이 어제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진 뒤 무려 4년 2개월 만이다. 현직 국회의원이 임기 중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지만, 윤 전 의원은 임기 종료 때까지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아 지난 5월 정상적으로 21대 의원직을 마쳤다. 국민 혈세로 형사 피고인의 세비를 다 지급한 꼴이다. “이러면 재판이 무슨 소용인가”, “사법부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이 사건은 2020년 5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 전 의원이 30년 동안 할머니들을 이용해 먹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다면서 사적 이익을 취한 행태가 드러나자 검찰은 4개월 만에 윤 전 의원을 기소했다. 하지만 공판 준비 기일만 6차례 열리는 등 재판이 지연돼 1심 판결까지 2년 5개월이나 걸렸다. 1, 2심에서 당선무효형이 나왔지만, 대법원에서 사건 배당 착오로 담당 재판부가 변경되는 등 1년 2개월간 계류됐다. 너무 안이하게 처리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법부가 여전히 관행에 젖어있는 것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정치인이 관련된 재판 지연이 유독 심하다는 점이다. 자녀 입시비리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5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1심 재판은 2년 2개월,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연루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1심 선고까지 3년 10개월이나 걸렸다. 재판이 지연되면서 선거법 등으로 기소된 정치인은 임기를 채우는 일이 다반사다. 일부 판사는 정치인에 대한 판결을 고의로 늦추다 사표를 던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재판 지연은 사법 불신을 낳기 마련이다. 신속한 재판은 엄정한 재판 못지않게 중요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하면서 재판 지연 해소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내세웠다. 사법정책자문위원회도 그제 민사 항소심과 형사 재판이 지연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이제는 말만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윤 전 의원 같은 사례가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법관들은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