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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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지명→10년 백업→11년 천재 유격수...그라운드 떠나는 ‘두산 유격수의 역사’ 김재호 “종신 두산 행복했다”

프로야구 두산의 유격수 김재호(39)는 2004년 중앙고를 졸업하고 두산에 1차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다. 1차지명에서 알 수 있듯, 많은 기대를 받으며 프로에 입단했지만 프로 데뷔 직전 해인 2003년에 육성선수로 입단한 손시헌이 2004년부터 풀타임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김재호에겐 주전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데뷔 첫해인 2004년엔 36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석은 단 9번. 주로 대수비로 출전했다는 얘기다. 데뷔 첫 안타도 2004년엔 나오지 않았다.

 

손시헌에게 가려진 시간은 꽤 길었다. 군 제대 후 2008년 돌아왔을 때도 김재호에겐 주전 자리가 없었다. 준수한 수비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다른 포지션으로 전향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유격수 자리를 떠나 다른 내야로 가기도 힘들었다. 3루수엔 ‘두목곰’ 김동주가 버티고 있었고, 2루엔 ‘국가대표 2루수’ 고영민이 있었다. 그렇게 준주전급 선수로 뛰던 김재호에게 주전 내야 총사령관 자리가 돌아온 것은 손시헌이 FA 자격을 얻어 NC로 떠난 2014년부터였다. 10년을 버틴 끝에 주어진 주전 유격수 자리였다.

 

10년을 1~2군을 오가면서도 버텨낸 대가로 얻은 열매는 너무나 달콤했다. 주전 2년차인 2015년엔 데뷔 첫 3할 타율(0.307, 416타수 129안타)에 세 자릿수 안타도 처음 기록했다. 백업 선수로 10년을 버티게 해준 수비실력은 여전했다. 두산이 통합우승 5연패를 노리던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김재호는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10년을 넘게 버텨온 ‘천재 유격수’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6년에도 타율 0.310을 기록하며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2연패에 성공했다. 한국시리즈 우승도 세 번(2015, 2016, 2019)이나 경험했다.

 

10년을 백업 유격수로로, 11년을 천재 유격수로. 21년간 두산의 내야를 든든히 지켜온 김재호가 프로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두산 ‘원클럽맨’으로. 김재호는 최근 구단에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김재호의 프로 통산 성적은 21시즌 1793경기 타율 0.272(4534타수 1235안타), 54홈런, 600타점. 화려하진 않지만, 언제나 묵묵하게 그라운드를 지킨만큼 21년간을 쉬지 않고 그린 나이테는 화려하게 쌓였다. 김재호가 남긴 1793경기 출장은 역대 베어스 프랜차이즈 최다 기록이다(2위 안경현·1716경기).

 

두산 유격수의 모든 역사에는 김재호의 이름이 있다. 유격수 출장 기준 안타, 타점, 홈런 등 대다수의 기록에서 김재호가 베어스 프랜차이즈 1위다. 이처럼 10년 이상의 퓨처스리그(2군) 생활에도 특유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며 역사를 쌓은 그는 여전히 숱한 후배 선수들의 롤모델로 꼽힌다.

 

김재호는 “원 클럽맨으로 은퇴할 수 있게 해주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님께 감사드린다”며 “한국야구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부족했던 것들만 떠오른다. 앞으로도 야구의 발전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꽃을 피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두산베어스 팬들은 끝까지 나를 믿고 응원해주셨다. 그 덕에 21년의 현역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끝으로 “후배 선수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비록 유니폼을 벗지만 마음만큼은 언제나 두산베어스와 함께할 것이다. 앞으로도 뜨겁게 응원하겠다”고 덧붙였다.

 

두산은 2025시즌 중 김재호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