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이래로 국방 분야에서 주목받는 전술 중 하나가 먼 거리에 있는 지상표적을 정밀타격하는 것이다.
적군의 위협 범위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적 내륙 지역을 공격하는 것은 전략적 효과와 더불어 적군에게 심리적 충격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자주 사용하는 스톰 섀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톰 섀도와 더불어 많은 관심을 받는 무기가 공중발사탄도미사일(ALBM)이다.
전투기에서 쏘는 ALBM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보다 사거리가 더 길고 속도도 빠르며 비행시간은 짧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보다 운용 범위가 넓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난달 이스라엘이 이란에 공습을 감행했을 때 ALBM이 사용됐다. 이스라엘의 장거리 공격 옵션을 늘려 전략적 억제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ALBM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장거리 공습의 핵심, ALBM
ALBM은 이스라엘의 장거리 공습작전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스라엘과 이란 테헤란은 직선거리로 약 1600㎞ 떨어져 있다.
최단 거리로 비행해도 이스라엘 전투기는 요르단과 이라크 또는 시리아와 이라크 영공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이란을 공습하겠다는 이스라엘을 위해 영공을 선뜻 내줄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이란 갈등에 끼어들게 되면 그 피해는 만만치 않다.
영공에서 활동해도 공중급유 등의 지원은 받을 수 없다. 이란에 포착될 경우 공습이 실패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작전에 돌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제약이 있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직후 이란의 방공체계와 미사일 생산시설 등을 거리낌 없이 타격했다.
이 과정에서 ALBM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군사전문매체 제인스에 따르면, 이란 공습에 투입된 이스라엘 ALBM의 사거리는 1400㎞에 달한다.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란 내륙이나 국경 인근까지 침투하지 않고도 공격을 감행, 조종사들이 불의의 사고로 희생되거나 이란군에 사로잡힐 위험도 없앴다.
이스라엘 공군 F-15, F-16 전투기의 작전 반경을 공중급유기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대폭 확대하는 효과도 얻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지난달 말 온라인에 유출된 미국 국방부 문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공습을 앞두고 상당한 수준의 훈련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록스(ROCKS), 골든 호라이즌 ALBM이 포착됐다.
이스라엘은 예전부터 F-15에 탑재·운용하는 스패로 계열 표적용 탄도미사일을 갖고 있었다.
애로-3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체계의 성능을 시험하려면 탄도미사일 특성을 모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국토가 좁은 이스라엘에선 탄도미사일을 쏘기가 어렵다. 따라서 F-15에 표적용 탄도미사일을 탑재·발사하는 방식을 썼다.
이는 이스라엘이 ALBM을 공격용으로 쓸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됐다.
라파엘사가 개발한 록스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모사한 블루 스패로에 팝아이 공대지미사일과 스파이스 정밀유도폭탄 기술 등을 결합한 것이다. 적의 레이더파를 추적하는 기능도 있다. 골든 호라이즌은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기종이다.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은 에어 로라(AIR LORA)를 만든 상태다. 지상발사용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로라를 항공기에 탑재한 형태다.
에어 로라는 초음속으로 비행하며 위성항법체계(GPS) 및 관성항법체계(INS)에 의한 유도를 통해 모든 기상 조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고폭탄 또는 관통탄을 장착해 벙커 파괴도 가능하다. 지상 발사용 로라는 최대 282㎞를 날아가지만, 에어 로라는 이보다 훨씬 먼 거리까지 비행한다. F-16 등의 전투기에 장착이 가능하다.
2018년 최초 공개된 IAI의 램페이지는 초음속으로 비행해 적 방공 시스템에 잘 포착되지 않고 적진 깊숙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다. 레이더 기지나 지휘시설 등을 타격하는 용도로 쓰인다. 사거리는 300㎞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이스라엘 공군은 F-16에 렘페이지 미사일을 장착한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실제로 F-16에서 렘페이지 미사일을 사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외에 인도가 렘페이지를 도입해 운용중이다.
◆러시아 등도 ALBM 만들어
ALBM은 이스라엘 외에도 여러 국가에서 개발·운용되고 있다. ALBM이 지닌 특성과 장점 때문이다.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이 큰 효과를 거두면서 다른 나라들도 이와 유사한 무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방공체계 기술이 발달하면서 순항미사일이 요격되는 사례가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공대지 순항미사일 상당수를 격추했다.
반면 탄도미사일은 순항미사일보다 훨씬 빠르므로 요격될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지상에서 운용하면 이동과 전개에 제약이 있고, 적군도 어느 정도는 발사를 예측할 수 있다.
ALBM은 제트엔진으로 비행하는 순항미사일보다 빠르고 사거리가 길고, 인공위성이나 무인기 등을 통한 감시에 취약한 탄도미사일의 문제점을 해결한 무기로 평가된다.
초음속을 가볍게 넘을 정도로 빠른 속도에 더해서 유도 기술의 발달로 정확도까지 높아지면서 파괴력이 한층 강해졌다. 기존 지상 발사 탄도미사일보다 방어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전투기나 폭격기 등을 발사 플랫폼으로 쓰고 있어서 발사 지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는 미사일 방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유도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국가라면 ALBM 개발에 나설 기술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ALBM에 관심을 보이는 나라가 늘어나는 이유다.
정밀유도장치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항공기 특성에 맞게 개조하고 항공기와의 체계통합을 진행하면, 이스라엘처럼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비대칭무기가 탄생한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ALBM을 실전에 사용한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미그-31 전투기에 탑재하는 킨잘 미사일을 운용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투입된 킨잘은 이스칸데르 지상발사 탄도미사일과 유사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미그-31 전투기와 Tu-22 폭격기에 탑재된다. 음속의 10배에 달하는 속도로 2000∼3000㎞를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킨잘 미사일이 서방의 미사일방어망을 돌파하는 무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키이우로 날아가던 킨잘 미사일이 미국산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에 의해 격추됐다고 알려지면서 킨잘 미사일의 위력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중국은 H-6N 폭격기에서 발사하는 ALBM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유사시 대만 해협으로 전개할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움직임을 견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일본 오키나와, 미국령 괌 등에 있는 미군 기지를 타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괌엔 미군 사드(THAAD·고고도요격미사일)가 배치되어 있고, 오키나와도 방어체계가 있다. 순항미사일이나 전투기 침투에 의한 공습 등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ALBM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제공권이 확보된 중국 본토에서 ALBM을 쏘면 일본 오키나와 등을 충분히 타격할 수 있다. 지상 발사 탄도미사일과 달리 중국 영공 어디서든 ALBM을 발사할 수 있어 기습 효과도 크다.
중국은 현재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개발하고 있는데, 기존의 전략 임무를 신형 폭격기에 넘기고 H-6N은 ALBM이나 극초음속미사일의 발사 플랫폼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도 KF-21에 ALBM을 탑재하는 방안이 물밑에서 거론되고 있고, 일부 기술 개발도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KF-21이 완전하게 전력화되지 않았고, KF-21에 탑재하고자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개발중인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도 완료되지 않았다.
극초음속미사일이나 공대함미사일 등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ALBM이 본격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