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징역형이라는 비교적 중한 형을 내린 데는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알려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준 책임이 무겁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발언이 허위가 아니라거나 고의가 없었다는 이 대표 측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언 당시의 맥락과 유권자에게 주는 인상을 기준으로 봤을 때 허위사실 유포가 맞는다는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재판장 한성진)는 이날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이 사건 범행은 모두 피고인을 향해 제기된 의혹이 국민적 관심사인 상황에서 의혹에 대한 해명이라는 명목을 빌어 이뤄졌고, 방송을 매체로 이용해 그 파급력과 전파력이 컸다”고 지적했다. 또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하여야 하지만, 허위사실 공표로 인하여 일반 선거인들이 잘못된 정보를 취득해 민의가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 등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양형이유를 밝혔다.
◆“이재명, 김문기 기억했을 것”
법원은 이 사건의 한 갈래인 김문기씨 관련 ‘골프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대표는 대선을 3개월 앞둔 2021년 12월 채널A에 출연해 “마치 제가 (김씨와 해외 출장 중)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사진 중 일부를 떼 내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했다. 이 대표 측은 재판에서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발언한 것일 뿐이고, 조작이 아니더라도 해당 사진이 찍힌 그때 골프를 친 것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그러나 이 발언이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와 김씨의 관련성이 부각되던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을 짚으며 “일반 선거인의 입장에서는 피고인이 김문기와 해외골프를 함께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판단했다. 또 출장 중 골프를 함께 친 사람은 김씨와 유동규(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씨가 전부라 기억에 남을 만한 행위로 보이는 점, 김씨는 대장동 사업의 핵심 실무자였고 경기도지사이던 이 대표의 재판을 도왔던 점 등을 감안하며 골프 발언은 허위로 볼 수 있고 고의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가 다른 방송에 나와 ‘성남시장 재직 시 김문기를 몰랐다’라고 말한 부분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일부 무죄 판단을 내렸다. 검찰 주장대로 김씨와 교유(交遊) 행위가 없었다는 의미로 단정할 수 없어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다만 김씨와 관련한 발언들이 포괄일죄(여러 행위가 포괄적으로 하나의 죄를 구성)에 해당하므로 골프 발언을 유죄로 인정하는 이상 별도로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았다.
◆백현동 부지변경도 “이재명이 스스로 검토”
이 사건의 나머지 큰 갈래인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다. 이 발언은 2021년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장에서 나왔다.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는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해 응할 수밖에 없었다”,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혁신도시법 43조 6항(국토부장관이 요구하면 지자체는 이를 반영해야 한다)을 근거로 협조 요청을 해 따라야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백현동 부지 용도지역 변경은 국토부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 스스로 검토하여 변경한 것”이라며 이 대표의 발언이 허위라고 봤다. 이 대표나 성남시 공무원들이 국토부 공무원들로부터 용도지역 변경을 해주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을 당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또 이 발언이 나온 2021년 10월경 백현동 부지에 대한 의혹 제기가 계속된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대표에게 허위발언에 대한 고의성도 인정된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이재명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의 허위발언이 유권자 판단에 중요한 사항과 관련됐고 과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50만원)을 선고받은 전력 등이 있어 다소 무거운 형이 선고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양형기준은 당선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가 인정될 경우 징역 10개월 이하 또는 벌금 200만∼800만원을 선고할 것을 권고한다. 다만 △허위사실이 후보자 평가에 관한 선거구민의 매우 중요한 판단 사항에 관계되는 경우 △선거일이 임박한 경우 △상대방이 상당히 다수이거나 전파성이 매우 높은 경우 등 가중요소가 있다면 징역 8개월∼2년 또는 벌금 500만∼1000만원을 선고하도록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선고 이후 “기본적인 사실인정부터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라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현실의 법정은 아직 두 번 더 남아있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며 “여러분께서도 상식과 정의에 입각해서 판단해 보시면 충분히 결론에 이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