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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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구속” vs “윤건희 퇴진”… 보혁 장외집회 세대결 [이재명 유죄 후폭풍]

반으로 갈라진 광화문

수세 몰린 야권, 지도부 대거 참석
李 “이 나라 주인은 국민 보여주자”
보수단체선 “감옥으로” 맞불집회
양측 물리적 충돌로 번지진 않아
시민 “귀 찢어질 듯” 피로감 호소

가을비가 내린 16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광장. 파란색 우의를 입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광장 북측의 차도를 메웠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이 주도한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 집회 참가자들이다. 야권의 장외집회는 이날로 3주차를 맞았지만, 전날 내려진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판결로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게 전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야당 지도부와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규탄뿐 아니라 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1심 선고 후 첫 주말인 16일 보수진영, 진보 진영의 도심 집회는 계속됐다. 이날 오후 전국안보시민단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오후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3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의 장외집회 장소에서 남쪽으로 600여m 떨어진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가 ‘이재명 구속 촉구 광화문국민혁명대회’를 열었다. 야권의 장외집회에 대한 ‘맞불집회’의 성격이 강한데, 이들 역시 전날 법원 판결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모습이었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은 야권과 보수단체의 집회로 양분됐다. 이 대표의 징역형에 반발하는 야권과 이에 맞불을 놓으려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세대결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날 야권의 장외집회에는 이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혁신당, 진보당 등의 군소야당도 합류했다. 앞서 민주당 주도로 열린 1차, 2차 집회는 민주당 자체 행사로만 치렀다. 전날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로 야권이 수세에 몰리자, 장외집회에서 단일대오를 구축한 형상이다.

 

이 대표는 우비를 입고 연단에 올라 “어느 순간부터 이 나라의 주인은 윤석열, 김건희, 명태균 등으로 바뀐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든다”며 “우리가 주인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자”고 소리쳤다. 박 원내대표는 “법기술자들이 국민주권을 침해하고 법치를 우롱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법감정을 벗어난 정치판결에 분노한다. 이게 나라냐”라고 법원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전국안보시민단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장외집회를 열고 전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제 우리의 정당한 분노의 힘을 모아 윤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며 “혁신당 총선 구호는 ‘3년은 너무 길다’였지만 이제 기간을 줄였다. 석 달도 너무 길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재명은 무죄다”, “윤건희(윤석열+김건희)를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호응했다. 참가자 상당수는 전날 1심 판결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집회에 참석한 김모(52)씨는 “매번 고민하다가 어제 선고를 보고 처음 광화문 집회에 나왔다”며 “사법부가 사람에 따라 다른 판단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서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북측광장 앞에서 개최한 ‘김건희 특검 수용, 국정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시민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야권이 연대한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0만여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2만5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의 장외집회는 1주차(2일)에 30만여명, 2주차(9일)에 20만여명이 참석했다고 주최 측은 추산했다.

 

반면 광장의 남측에서는 “이재명을 감옥으로”, “이재명을 구속하자”라는 보수 정당과 단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유통일당 등이 동화면세점 앞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구속을 촉구하는 맞불집회를 열었다. 덕수궁 대한문 인근에서도 보수단체 집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1심 선고 후 첫 주말인 16일 보수진영, 진보 진영의 도심 집회는 계속됐다. 이날 오후 전국안보시민단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3차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집회를 열었지만, 물리적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다. 이달 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개최한 집회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관을 폭행해 11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집회로 광화문 일대의 시민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양 진영이 경쟁하듯 소음을 내는 탓에 광화문광장에서는 옆 사람의 말도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광장 주변에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지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여자친구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김모(24)씨도 “집회는 여러 번 봤지만 이 정도 소음은 처음”이라며 “귀가 찢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덕수궁을 찾은 A씨는 “외국인들이랑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