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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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한국 자본시장① [더 나은 경제, SDGs]

 

지난 15일 코스피 지수 추이. 네이버파이낸셜 홈페이지 갈무리

 

부진에 빠진 한국 주식시장의 긴 터널에선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라는 큰 호재가 있었음에도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폐지에 부정적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일 이재명 대표의 폐지 찬성 의견을 공식 당론으로 정하고, 정부의 금투세 폐지안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확정됐다.

 

금투세 폐지는 오랜 기간 논쟁을 빚어왔다. 지난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처음으로 자본시장 활성화와 개미투자자를 위해 금투세 폐지 필요성을 주장하며 깃발을 들었고, 이후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 기준 완화 등도 연달아 요구하며 국내 증시 투자자의 큰 호응을 끌어낸 바 있다. 또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강조했는데, 그 중 핵심 선제 조건으로 금투세 폐지를 언급했었다.

 

여당과 대통령, 정부는 물론이고, 야당까지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손발을 맞추며, ‘금투세 폐지’, ‘기업 밸류업’, ‘코리아밸류업지수’ 등 연일 맞춤 처방을 내놨지만, 현재까지는 사실상 백약이 무효한 상태다.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 주가가 지난 14일 4만9900원으로 마감하며, 4년 5개월 만에 ‘4만전자’로 밀려나기도 했다. 2020년 6월 5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종가 4만9900원을 기록한 뒤 처음으로 4만원대까지 밀려났다. 지난 7월11일 기록한 연고점인 8만8800원 대비 44%나 급락했다.

 

이튿날 삼성전자가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공시하고,  외국인 약 1347억원과 기관 약 531억원의 저가 매수세로 다행히 전 거래일보다 3600원(7.21%) 오른 5만3500원에 장을 마쳤다.

 

특정 기업의 주가 등락이 자본시장 전체를 대변할 수 없지만, 삼성전자는 국가 산업 경쟁력, 무역수지, 일반 개인 투자자, 근로자, 금융시장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기업이다. 그만큼 한국 자본시장이 현재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코스피는 올해 다양한 호재에도 힘을 쓰지 못하며, 내내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1분기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사상 최대 실적 발표로 전 세계 반도체업계에 훈풍이 불었고, 국내 코스피도 12월 결산법인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하는 등 실적 호조를 보였었다. 2분기부터는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동력을 이어가는 등 코스피의 우상향을 기대할 여건도 조성됐었다.

 

이러한 호재에도 지난 8월5일 오전 코스피200 선물이 기준 가격 366.7에서 348.05로 5.08%(18.65) 폭락 후 1분간 지속되자, 5분간 코스피200 선물의 프로그램 매매 매도호가 효력을 정지(사이드카 발동)했고, 오후에는 코스닥 지수가 급락하면서 사이드카가 또다시 발동됐다. 이른바 ‘블랙먼데이’로 기록된 당시 거래소의 사이드카 발동은 2020년 이후 4년 만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밸류업 프로그램도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체감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데, 기업 요구의 핵심인 규제 개혁과 세금감면은 여전히 모호한 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법인세와 상속세율 하향 조정이 현재로는 단기간 기대하기 어려운데, 전문가들은 기업 활동의 환경 개선이 선행되어야 밸류업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추진처럼 일반 개인 주주의 이익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몇몇 기업의 잘못된 행태가 정부의 세금 개선 해법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혼란스럽고 분열된 정치권, 금리 인하의 타이밍 논란, 성장주에 집중된 코스피 구성, 코스닥의 한탕주의 세력과 이른바 ‘좀비 기업’, 물적 분할로 개인 투자자를 울리는 기업 관행, 미국 증시와 가상자산 시장으로 진출하는 개인 투자자의 투심 확대까지 한국 자본시장의 발목을 잡는 다양한 요인이 켜켜이 쌓여있다.

 

연말까지 다양한 정책과 개선방안이 논의되겠지만, 더 큰 문제는 올해가 아닌 내년부터 불거진다. 강달러와 ‘관세 폭탄’, 무역분쟁, 금리 인상 등의 우려 요인이 예상되는 제2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우리 자본시장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 걱정인 탓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점점 산으로 가는 상황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