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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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방의원들 노린 딥페이크 협박, 누구든 타깃이 될 수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분야와 여성·남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서울, 인천, 부산 등 전국 기초의원 30여명이 최근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가 담긴 협박 메일을 받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딥페이크 범죄는 그동안 여성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피해자가 20∼40대 남성 지방의원들이다. 정부가 대책을 쏟아내는데도 디지털 성범죄가 유명 연예인, 대학·중고교, 군을 넘어 정계까지 퍼지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원들 얼굴 사진을 합성한 나체의 남성들이 여성과 누워 있는 음란 사진이 많았다. 범인들이 지방의원을 상대로 범행 수법을 테스트한 뒤 향후 유명 정치인·국회의원·정부 공직자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치인들의 경우 공개된 영상과 사진이 많아 딥페이크 제작이 쉽고 일반인은 인물과 얼굴, 목소리의 진위를 분간하기 어렵다. 가짜 음란물이 선거 등에 악용돼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번 범죄에는 딥페이크 기술에 기존 보이스피싱 기법이 더해진 신종수법도 등장했다. 범인들은 음란 사진을 보낸 뒤 삭제 대가로 5만 달러 상당 가산자산을 요구하고 QR코드를 보내 접속도 유도했다. 경찰은 협박 메일 일부가 중국에서 발송된 것으로 파악하고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 등을 추적하고 있다. 딥페이크를 텔레그램 등 해외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망을 통해 유포하면 신속한 수사나 증거확보, 피의자 검거가 어렵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만큼 신종수법을 동원해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시도가 기승을 부릴 게 틀림없다.

검경은 수사력을 다 동원해 디지털성범죄를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전문수사인력과 예산 확충을 통해 해외 SNS 모니터링 등 첨단수사역량도 키워야 한다. 디지털성범죄가 국경을 초월한 사이버 공간에서 빈발하는 만큼 국제사법공조를 강화하고 외국 수사기관과 인터폴 등 국제기구와도 촘촘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바란다. 정부와 국회가 지난 9월 법 개정을 통해 딥페이크 처벌을 강화했다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각지대가 없는지 살펴보고 더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딥페이크 범죄는 영혼을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이고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각인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