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산업(K방산)이 세계 각지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일부 유럽·중동국가 등에 집중됐던 방산 수출이 이번엔 칠레에서 중남미 국가 실적 확대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HD현대는 16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팩) 정상회의가 열린 페루 리마에서 페루 국영 시마조선소와 ‘잠수함 공동 개발을 통한 페루 산업 발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MOU는 페루 해군이 추진하는 노후 함정 교체 사업의 일환으로, 잠수함 건조 사업 수주를 위한 양사 간 협력 강화가 목적이다. HD현대중공업은 향후 시마조선소 현대화와 페루 조선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등 페루 정부 및 해군과의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가면서 후속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시마조선소와 중남미 방산 수출 역사상 역대 최대 금액인 총 6406억원 규모의 함정 4척에 대한 현지 건조 공동생산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같은 날 현대로템은 페루와 지상무기 수출 총괄협약을 맺었다. 현대로템은 지난 5월 페루 조병창이 발주한 차륜형 장갑차 공급 사업을 수주해 중남미 시장 최초 진출을 성공한 데 이어 이번 협약 체결로 K2 전차와 계열전차, 차륜형 장갑차 후속 물량 등 지상무기체계 전반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페루 국영 항공 전문기업인 세만과 KF-21 부품 현지 공동생산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KAI는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을 추진 중인 페루에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과 다목적 전투기 FA-50으로 구성된 패키지를 제안해 수주를 노리고 있다.
이처럼 페루가 한국의 육·해·공 방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한국의 방산은 신속한 공급과 합리적 가성비 측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남북 분단·정전(停戰) 상태라는 특수성으로 냉전 이후에도 대규모 생산라인을 유지해 대량의 방산물자 적기 공급 역량을 보유했다. 한국 무기체계는 국제 방산시장에서 최고급 대비 약 90%의 성능을 갖췄는데 가격은 60∼70% 수준으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체 방산 수출 전망도 밝은 편이다. 한국 방산 수출은 2010년대에 연간 20억~30억달러 수준을 유지하다 2021년 이후 국제정세의 변동과 함께 급격한 증가세를 타 2022년 173억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찍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위협을 느낀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K-9 자주포와 K2 전차, FA-50, 천무 등 국내 무기체계를 동시다발적으로 사들였기에 가능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한화, KAI, 현대로템 등 주요 방산기업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하기도 했다.
올해 정부의 K방산 수출 목표는 200억달러, 신기록 경신이다. 주요 방산기업이 거점 시장에 수출사무소를 속속 개소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뛰고 있다. 일부 기업은 현지생산 거점까지 마련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 방산기업 최초로 호주서 자주포와 장갑차를 생산하기 위해 마련한 공장(H-ACE)이 그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 분쟁이 확산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주요국이 방위사업 예산과 관련 산업 규모를 늘리고 있어 K방산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