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폭염으로 감귤이 터지는 열과 피해가 심했고, 겉이 노랗게 물들지 않는 등 상품성도 떨어진 상황입니다. 초록빛을 띤 감귤이지만 당도 면에서 엄격하게 선별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농협 거점 산지유통센터(APC)에서 만난 현종호 유통과장의 말이다. 이맘때 제철인 제주 감귤은 본격적인 출하가 시작된다. 극조생 품종에 조생까지 눈코 뜰 새 없는 시기를 보내야 한다.
올여름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는 감귤 착색에 악영향을 끼쳤다. 지난여름 제주 북부에는 75일간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 밤에도 고온이 이어진 결과 감귤은 노랗게 익지 못하고 초록빛을 띤 채 시장에 나온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초록빛 감귤은 시거나 단맛이 덜하지만, 올해는 충분히 숙성된 상태인데 껍질만 초록빛을 보여 당도가 높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제주도는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착색률과 상관없이 당도가 높으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감귤 열매 착색률이 50% 미만이면 시장에 유통할 수 없었지만, 현재는 당도만 8.5브릭스 이상이면 판매할 수 있다.
이상고온은 출하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먼저 출하하는 극조생 감귤은 폭염과 열대야로 올해 4만8000t 출하에 그쳤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75% 이상 감소한 수준이다. 다만 조생과 중·만생 품종은 공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착색률 기준 조례를 완화한 덕분에 노지 감귤 출하량은 40만8000t으로 전년(39만8000t)보다 소폭 늘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이어지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개발(R&D)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도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센터는 국내 품종의 다양화와 자급화를 목표로 개발과 보급을 추진 중이다. 이 센터는 변해가는 기상조건에 적응력 높은 품종을 육성하고, 이를 농업 현장에 신속히 확산시키기 위한 연구에 한창이다.
이와 함께 농진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는 감귤은 물론이고 아열대 작물의 품종 개발과 재배기술을 연구해 보급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센터는 국내 환경에 적합한 파파야·망고·공심채 등 17개 작물을 선정해 재배지 예측, 재배기술 개발 등에 나서고 있다. 전지혜 연구소장은 “기후변화를 기회 삼아 새로운 작물과 재배기술을 도입해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