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전(攻城戰)만큼 힘든 싸움은 없다고 한다. 성이란 것이 원래 적의 공격을 잘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건물이기에 점령이 쉽지 않은 탓이다. 공격하는 측의 병력이 성내 병력보다 몇 배가 더 필요하다. 직접적인 공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성을 완전히 포위해 성안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리다 제풀에 항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때 성안에서는 외부의 지원병이 나타나 포위망을 뚫어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곤 한다.
요즘 체육계를 보면 현대판 공성전을 치른 것 같다. 국민적 비판 여론을 등에 업은 가운데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힘을 합쳐 각각 3선과 4연임에 도전하고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해 전방위적 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쌓아 놓은 공고한 성안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단체 내부에는 자신들만의 든든한 추종 세력을 구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체육단체장이 3연임 이상 도전하려면 각 단체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스포츠공정위원들을 단체장들이 임명한다. 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문체부의 직무정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사를 통과해 3선 도전의 길이 열렸다. 정 회장 역시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같은 심사 결과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체육회와 축구협회 모두 두 사람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자신들의 사람들로 조직을 장악했기에 출마만 한다면 연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것만으로는 이미 다른 많은 것을 가진 두 사람이 그렇게 많은 비난과 수모를 받으면서까지 굳이 이 ‘성’을 지키려 하는 이유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명히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데는 비난을 받는 것 이상의 이득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체육단체장 지위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이득은 국제적 지위와 네트워크다. 이를 유지하면 적지 않은 편의와 이권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장 자격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라는 엄청난 권한과 명예를 지닌 자리까지 얻었다. IOC 위원은 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국빈급 대우라는 특혜를 받는다. 정 회장의 경우 현대가(家)가 오랜 기간 운영해온 축구협회장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개인적인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고집한다는 설명도 있지만 사업가로서 축구협회장이라는 직위가 주는 도움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많다. 축구협회장이라는 명함이 기업 최고경영자(CEO) 명함보다 해외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많아 이것이 해외 수주 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 지위는 역으로 국내 자리 수성(守成)에도 도움이 된다. 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각국 단체에 정부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각국 올림픽위원회나 축구협회에 부당한 간섭을 한다면 각 협회에 자격정지나 주관대회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내린다. 우리 정부의 대한체육회와 축구협회 징계 요구가 IOC와 FIFA에서 정치적 간섭으로 받아들여진다면 한국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이 회장과 정 회장은 바로 IOC와 FIFA가 ‘정치적 간섭 금지’라는 무기로 공성의 포위망을 뚫어줄 지원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문제는 이들의 장기집권이 권력 집중과 의사결정의 독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는 대신 조직 내 다양성과 창의성은 억압될 수밖에 없다. 두 단체가 내부적으로는 혁신을 멈춘 조직으로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결국 대한체육회장과 축구협회장 문제는 단순히 이기흥과 정몽규라는 개인의 자격을 넘어서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와 미래 방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장기집권의 폐해와 쇄신의 필요성 사이에서, 체육계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한국 스포츠의 향후 10년을 결정지을 수 있다. 성을 지키겠다는 고집에 성안 민초들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