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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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등록 조산사, 임산부에 배정… “양육책임도 설명 필요” [심층기획-저출생 시대 ‘결혼 공포증’]

네덜란드 ‘자녀 보호’ 사회적 논의 지속

‘지속 양육·건전한 이혼법’ 시행
등록파트너십 관계 해지할 때도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재판 의무

비혼 커플은 결합만큼 헤어지는 일도 쉽기 때문에 이들의 자녀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 네덜란드가 비혼 가족의 자녀 보호를 위한 고민을 계속하는 이유다.

2016년 학술지 ‘가족과 법’에 실린 논문 ‘동거했던 부모와 양육계획: 누가 노력을 기울이는가?’의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 동거했다가 헤어진 부모의 13.2%는 별거 이후 자녀 양육에 대해 전혀 합의하지 않았다. 이들 중 자녀 양육에 대해 구두로라도 합의한 경우도 24.3%에 불과했다. 양육계획서 등 서면으로 명시하지 않았을 경우 자녀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 10월 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데 보더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마갈리 반 마넨 변호사(왼쪽)와 민디 모스크 변호사. 이들은 “아동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가족법학회(IAFL) 소속 마갈리 반 마넨 변호사는 “양육 계획은 아이를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는 것임에도 많은 부모들이 이러한 모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양육 계획에는 △이혼 후 양육 업무를 분담하는 방식 및 접근의 권리와 의무를 형성하는 방식 △자녀 및 자녀의 자산에 관한 중요한 사항에 대해 서로 협의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 △자녀의 양육 및 양육 비용의 분할에 관한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19일 네덜란드 법무부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2023년 1월부터 비혼 커플 사이에서 출산한 아이에 대해 부모가 자동으로 친권을 갖도록 법을 개정했다. 결혼한 부모와 결혼하지 않은 부모 간의 양육권 행사에서 차별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존에는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하면 어머니에게만 친권이 부여되고 아버지는 신고 절차가 필요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 추후 공동 양육권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2009년에는 ‘지속적인 양육 촉진 및 건전한 이혼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시 자녀의 복지를 보호하고 책임 있는 양육을 촉진하고자 하는 취지다. 이에 등록파트너십 관계를 해소할 때 미성년 자녀가 있다면 결혼한 부부처럼 반드시 법원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양육 책임을 문서로 의무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법 전문 민디 모스크 변호사는 “모든 것을 문서로 명확히 하려 하면 공동양육에서 자녀의 거주지를 어디로 등록할 것인지 등 항목마다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또 의도적으로 이혼을 지연시키기 위해 양육계획을 제출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는 자녀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마샤 안토콜스카이아 암스테르담 자유대 법학부 교수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양육 계획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호주는 법적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의무적인 양육 계획을 도입했다가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자녀 양육 문제가 생겼을 때 법원에 가기보다 중재 센터를 설치해 먼저 합의를 돕는 방식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제안도 곁들였다.

전문가들은 임신했을 때부터 별거 시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과 주의사항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 마넨 변호사는 “양육계획은 커플이 헤어진 후 세우는 것이지만 아동 보호를 위해선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헤어졌을 경우 양육 책임에 내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임산부에게 정부에 등록된 조산사를 배정해 준다. 조산사는 임산부에게 임신에서 출산까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때 양육책임에 관한 내용까지 함께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토콜스카이아 교수는 동거 커플에 대해선 국가가 의무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동거 가족의 경우 자녀에 대한 양육 의무는 있지만 커플 서로 간 부양 의무는 없어 별거하게 될 경우 소득 수준이 낮았던 쪽의 생활 수준이 크게 어려워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암스테르담=글·사진 안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