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해산 임무에 투입돼 총상을 입고,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을 목격한 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은 공수부대원이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공수부대원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투입된 광주에서 참상을 목도한 뒤 정신질환에 시달렸음에도 시민들에게 총과 칼을 겨눈 '가해자'라는 비판 속에서 수십 년을 참고 지낸 끝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행정1부(민지현 부장판사)는 최영수(66)씨가 강원서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1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뒤집고 승소로 판결했다.
1980년 11공수여단 소속 군인이었던 최씨는 5·18 민주화운동을 불법 시위·소요 사태 등으로 규정한 군 상부의 진압 명령에 따라 경계·정찰 등 임무에 투입됐다.
그곳에서 시위대가 발포한 총기의 유탄이 왼쪽 팔에 박히는 상처를 입었다. 또 함께 직무를 수행한 부대원이 총상을 입거나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후 37년이 지난 2017년 10월 최씨는 강원서부보훈지청에 "시위대 해산 임무 수행으로 인해 왼쪽 팔에 골절상을 입었고, 전우들의 부상과 사망을 지켜보았으며 그 후유증으로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를 입게 됐다"며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최씨가 행정소송을 냈던 2017년은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하며 진압군을 향한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군 동기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었던 시기였다.
그의 신청을 심사한 보훈지청은 2018년 1월 골절상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지만,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는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씨는 보훈지청의 비해당 결정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군 직무수행과 최씨의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 간 인과성이 없고, 최씨의 증상은 개인적인 분쟁 또는 민주화운동 진압군 비판 여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가 보훈지청에 낸 상이 발생 경위서에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 등 트라우마에 시달림'이라고 쓴 점에 주목했다.
보훈지청이 최씨의 정신적 상이를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가 전부라는 전제에서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점에 잘못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최씨가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하고 며칠이 지나 PTSD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받은 점,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당한 뒤 재차 정신과를 찾아 PTSD 진단을 받은 점, 2019년 12월에도 PTSD로 진단받은 점과 각 진단내용을 종합하면 최씨가 겪는 PTSD가 단순히 민주화운동 관련 여론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과거 직무수행으로 유발된 PTSD가 영화 등을 통한 반복적 재노출과 진압군 등에 대한 부정적 여론 형성으로 인해 더 악화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당시 군인이었던 최씨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느낄 정도의 사건이었던 데다 PTSD는 호전되었다가 재발하는 경우도 임상적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1심과 달리 최씨의 주장이 넉넉히 인정된다는 결론을 냈다.
보훈지청이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지난 14일 확정됐다.
최씨는 "당시 사태로 생긴 병인지도 모르고 숨기고 살면서 힘들어하는 동지들이 명예롭게 구제되어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봉사하면 살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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