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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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주의력은 왜 떨어지는가

어린 시절부터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져
정신 에너지 고갈·운동 부족 가장 흔한 원인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itivity disorder, ADHD)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하는 정신질환이라 성인을 주로 보는 나는 몇 년까지만 해도 ADHD 치료 약제를 처방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환자가 “내가 ADHD인 것 같아요!”라며 스스로 진단을 붙이고 찾아오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ADHD는 성인이 된 후에 갑자기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진단 기준에 따르면 12세 전부터 ADHD에 부합하는 증상이 이미 존재했어야만 진단할 수 있다. 성인 ADHD는 소아기부터 주의력 장애가 줄곧 지속되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 질환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직장인이 “요즘 들어 어이없는 실수를 자주 하고, 제 시간에 업무를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데, 이건 나에게 ADHD가 있기 때문이야!”라며 진단 꼬리표를 먼저 붙여선 안 된다.

성인에서 주의력이 저하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정신 에너지의 고갈이다. 업무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제 시간에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우울증의 주요 증상이다. 내적 에너지가 다 소진돼서 생각하고 행동을 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기억력이 감퇴되어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것도 우울증에서 흔하다. 탈진증후군, 소위 말하는 번아웃의 대표적인 증상은 업무 능력의 저하인데, 이것도 일시적으로 주의집중력과 같은 인지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육체적인 피로도 흔한 원인이다. 밤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돌려보고,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피로가 주의력를 떨어뜨린다. 평소에 체력 관리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며칠씩 야근을 해도 주의집중력이 쌩쌩할거야’라고 기대하면 곤란하다. 운동을 안 하면 주의력도 약해진다. ADHD의 비약물적인 치료법 중 효능이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운동이다.

정서적인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다. 불안은 주의력을 흐트러뜨린다. 특히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면 쉽게 산만해진다. 초조해지면 ‘내가 잘못한 것은 없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며 과도하게 자신과 주변을 살피게 되는데, 이런 상태를 주의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주의력을 감퇴시키는 주범이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대상에는 몰입을 잘하면서, 재미없는 일거리가 주어지면 집중을 못하는 것이다. 짜릿한 일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상관 없겠지만, 우리의 인생이란 것이 대개는 그렇지 않은 일들로 채워져 있게 마련이다. 반복적인 일상의 루틴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주의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쇠약해지고, 잘 활용하면 점점 발달하는 것이 주의력이다. 어린 시절부터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이미지에 길들여지면 집중력은 약해진다. 주의력을 뜻하는 영단어 attention은 ‘세상과 관계하면서 경험을 쌓아간다’라는 뜻의 아텐데레 attendere가 그 뿌리다. 어원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관계 경험이 빈약하면 주의력도 결핍되고 현실에 몰입하지 않고 가상 세계만 자꾸 기웃거리면 주의는 산만해진다. 이렇게 되면 ADHD 환자가 아니라도 주의력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