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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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박수받는 골프, 비난받는 골프

윤 대통령 ‘골프 외교’ 세간의 화제
삼가야 할 때 친 골프라 비난 초래
노무현 대통령은 골프 숨기지 않아
예산전용 ‘별장 골프’ 과한 건 사실

겨울의 초입인 11월은 골프 시즌이 끝나가는 시기다. 봄부터 이어져 온 각종 프로대회도 이즈음 막을 내리고 한 해를 결산한다. 타이틀을 거머쥔 선수들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전지훈련을 계획하며 내년을 기약하는 이들도 생긴다. 얼마 전 60대 초반의 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대뜸 “권노갑 나오는 방송 봤어?” 이런다. “나이가 아흔다섯이라는데 아직도 공을 친단다. 놀랍지 않냐. 일흔 정도 되면 골프를 접을까 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한다. 그의 언급은 지난달 28일 여야의 원로 정치인 8명이 방송 최초로 골프 라운드에 나섰던 프로그램이다. 여당 대표로 신영균, 정의화, 주호영, 김성태 전 의원이, 야당 대표로는 권노갑, 정세균, 우윤근, 우상호 전 의원이 자리했다. 특히 아흔일곱의 신영균 국민의힘 고문, 아흔다섯의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고문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골프 실력을 뽐냈다. 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은 장년층과 노년층이 한둘이 아니다. 평소 자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후 건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새삼 느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박수받는 골프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골프가 세간의 화제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와 골프 외교를 위해 최근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국내외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다. 알고 보니 하루 전인 9일 윤 대통령의 골프가 한 언론사의 취재망에 포착된 것을 알고는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당시 대통령 경호처는 윤 대통령의 골프를 현장 취재 중이던 기자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신고받은 경찰은 기자를 임의동행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부터 이달 9일까지 7차례 골프를 쳤다”는 민주당 주장까지 나왔다.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이 이미 석 달 전부터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고 골프 연습을 시작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전까지 극구 부인해온 터다. 대통령실은 입을 닫았다. 물론 골프 스윙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골프 외교를 염두에 둔 라운딩이라면 좀 더 치밀했어야 하지 않을까. 한 국가의 외교 전략이 저잣거리 술안주로 소비된 듯해 안타깝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들 입에서조차 조소(嘲笑)가 터진다. 대통령은 알까.

박병진 논설위원

“대통령이 골프 한 번 친 걸 두고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며 두둔하는 국민의힘 태도도 딱하다. 대중화 스포츠인데 골프를 친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게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언론이 윤 대통령 골프를 문제 삼는 건 부적절한 시기에 골프장에 나선 ‘무딘’ 감각을 나무라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 무인기의 평양 침투를 주장하며 ‘보복조치’를 밝힌 다음 날에도, “김영선 공천 줘라”는 대통령 육성 파일이 공개된 직후에도, 심지어 “아내의 신중치 못한 처신 무조건 잘못”이라며 고개 숙인 대국민사과 기자회견 이틀 뒤에도 골프장을 이용했다. 명태균씨의 공천 개입 폭로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침묵과 늑장 해명에 질린 터다. 좋게 봐줄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으로 국민에게 얼마나 미운털이 박혔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가벼운 처신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소환됐다. 대통령을 편드는 여당은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골프 사랑은 익히 알고 있지 않나. (야당의 공격은) 내로남불이고 적반하장”이라고도 했다. 노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골프를 쳤다. 매년 군 수뇌부를 불러 모아 라운딩을 즐길 정도였다. 굳이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차이다. 허물은 있다. 취임 한 달 만인 2003년 4월 대통령 별장이던 청남대를 국민에게 개방한 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6월 완공된 계룡대 인근 대통령 전시 지휘용 유숙(留宿) 시설을 이용했다. 사실상 대통령 별장이었다. 300∼400m 떨어진 계룡대 골프장도 자주 찾았다. 국방부는 시설 공사에 전방부대 장병용 막사를 짓는 예산 70억원을 전용했다. 이후 찾는 대통령들은 없었다. 과했다는 비난이 남는다. 이 또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