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과 정관장의 2024~2025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20일 대전 충무체육관. 정관장은 지난 8일부터 현대건설-흥국생명-현대건설-흥국생명을 만나는 ‘고난의 4연전’을 치르고 있다. 두 팀과 더불어 ‘3강’으로 평가받은 정관장이지만, 이날 경기 전까지 치른 3경기 결과는 모두 패배. 그나마 지난 12일 흥국생명전에선 풀 세트 접전까지 승부를 끌고가면서 승점 1을 챙기긴 했지만, 3연패는 너무나 뼈아픈 결과다.
팀 분위기 반등을 위해선 반드시 연패를 끊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또 하나의 악재를 만났다.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인 메가(인도네시아)가 허벅지 근육통으로 이날 경기에 결장한 것. 경기 전 만난 고희진 감독은 “무리하면 자칫 장기레이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선수 보호 차원에서 오늘 경기는 메가를 빼고 간다”라고 설명했다.
메가의 빈 자리는 토종 아포짓인 이선우 기용으로 메우기로 한 고 감독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선수들에게도 ‘장기 레이스니까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지막에 웃자’고 당부했다. 오늘이 딱 연패를 끊기 좋은 날 같다. 멋진 승부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메가의 결장 소식을 들은 흥국생명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지난 시즌에도 현대건설이 주전 세터가 빠졌음에도 진 적이 있고, 정관장의 공격수 2명이 바뀌었을 때도 졌다. 주요 선수가 빠졌을 때 오히려 졌던 기억이 많다. 제발 모든 팀이 건강해서 풀 멤버로 경기를 치렀으면 한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메가가 빠지면서 아본단자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준비한 경기 청사진이 흔들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두 사령탑의 엇갈린 표정. 결과는? 고 감독의 자신감은 허장성세였고, 아본단자 감독의 걱정은 기우였다.
1세트 초반만 해도 아본단자 감독의 걱정이 딱 들어맞는 분위기로 흘렀다. 투트쿠(튀르키예)와 정윤주의 공격이 정관장의 블로킹벽에 연이어 막히는 등 첫 테크니컬 타임을 맞이한 스코어는 정관장의 8-5 리드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메가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올 시즌 정관장의 고질적인 약점은 공격력 강화를 위해 영입한 부키리치가 아웃사이드 히터로 뛰면서 리시브 라인에 선다는 것. 그나마 부키리치는 커버 범위는 좁지만, 자기 앞으로 오는 목적타 서브에 어느 정도 대처하는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주전 리베로 노란의 리시브가 크게 흔들린다는 것. 이날도 흥국생명 선수들은 부키리치-표승주의 아웃사이드 히터들에게 때리는 비중만큼이나 노란에게 목적타 서브를 때렸다. 상대 리베로를 대놓고 흔들겠다는 포석이었다.
이날도 리시브에서 탈이 났다. 9-7로 앞선 상황에서 흥국생명의 아시아쿼터 미들 블로커 이닐리스 피치(뉴질랜드)의 서브를 노란이 리시브 실패한 게 신호탄이었다. 이어 이고은이 이번에 부키리치에게 목적타 서브를 넣어 서브 득점을 만들어내며 10-10 동점을 만들어냈다.
동점을 만든 이후엔 흥국생명의 독무대였다. ‘배구여제’ 김연경과 투트쿠의 좌우 공격이 불을 뿜었다. 두 번째 테크니컬 타임아웃의 점수는 흥국생명의 16-11 리드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7전 전승으로 잘 풀리고 있는 흥국생명은 서브 리시브가 흔들려도 잘 풀렸다. 18-13에서 부키리치의 강서브에 리시브가 크게 흔들린 것을 리베로 신연경이 간신히 받아내 상대 코트로 넘겼다. 정관장 세터 염혜선은 이를 정호영의 A-속공으로 연결했지만, 이를 피치가 혼자 코트 가운데에 떠올라 이를 막아냈다. 정관장이 리시브가 흔들리면 서브 에이스를 허용하거나 하이볼 상황에서 공격범실이 나온 것과는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국가대표 세터 출신인 염혜선이 올린 속공 토스가 범실이 나오는 등 스스로 자멸하며 1세트를 16-25로 내줘야했다.
2세트도 기본인 리시브와 수비 싸움에서 갈렸다. 세트 중후반까지 정관장이 선전하며 접전 양상이 펼쳐졌지만, 기본기에서 밀렸다. 흥국생명은 1세트부터 블로킹 커버나 디그가 최고 수준을 유지한 반면 정관장은 그렇지 못했다. 18-20에서 투트쿠의 후위 페인트가 코트 안쪽에 들어오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받아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염혜선과 이선우가 이를 놓친 장면이 대표적이다. 20-23에선 표승주가 이고은의 서브를 아무도 받을 수 없는 곳에 리시브를 했다. 부키리치의 공격으로 21-24로 따라간 상황에서 원 포인트 서버로 들어온 정수지가 서브 범실로 세트를 끝냈다.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3세트 들어 고 감독은 부키리치를 아포짓으로, 이선우를 아웃사이드 히터로 자리를 바꿨다. 부키리치에게 리시브 부담을 줄여주고 공격에 매진하려는 전술적 변화였다.
정관장의 포지션 변화는 먹히는 듯 했다. 세트 중반까지 16-13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범실에 울었다. 정호영의 서브 범실에 이선우와 부키리치의 연속 공격범실이 나오며 허무하게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후 경기는 초접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클러치 상황에서 앞서는 것은 ‘배구여제’ 김연경을 보유한 흥국생명이었다. 김연경은 21-21에서 3연속 공격 득점을 성공시키며 24-21 매치포인트를 만들어냈다. 이어 24-22에서 퀵오픈까지 성공시키며 흥국생명의 3-0(25-16 25-21 25-22) 셧아웃 승리를 완성시켰다.
개막 8연승을 달린 흥국생명은 승점 23으로 2위 현대건설(승점 20, 7승1패)와의 격차를 벌렸다. 반면 정관장은 ‘고난의 4연전’을 전패로 마무리하며 4연패의 늪에 빠졌다.
3세트 막판을 지배한 김연경이 56.67%의 공격성공률로 양팀 통틀어 최다인 20점을 몰아쳤고, 투트쿠가 13점으로 힘을 보탰다.정관장은 부키리치가 18점(공격 성공률 40%)으로 분전했지만, 팀 전체적인 경기력이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한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