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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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년 전 뱃길이 만든 특별한 우정… 韓·日 교류 새 역사 쓴다 [지방기획]

강원·日 돗토리현 자매결연 30년

1819년 조선 안의기 선장 표류로 ‘인연’
1994년 돗토리현서 강원도에 교류 제안
2024년 김진태 지사 등 대표단 日 공식 방문

인구감소·청년이탈 등 ‘공통 문제’ 고민
‘강원 방문의 해’ 선언해 관광교류 합의
바이오·의료 분야 등 국제 협력도 논의

지금으로부터 205년 전인 1819년 1월7일 평해(경상북도 울진의 옛 지명)에서 상선 한 대가 출항했다. 이 배에는 강원도 출신 안의기 선장과 선원 12명이 타고 있었다. 안 선장 일행이 탄 배는 강풍을 만나 동쪽으로 표류했고 닷새 후인 12일 일본 돗토리번(현 돗토리현·鳥取縣) 근해에 불시착했다. 기록에 따르면 돗토리 주민들은 안의기 일행을 4개월간 각별하게 보호했다. 덕분에 이들은 그해 9월 부산을 통해 강원도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1991년 돗토리에서는 당시 안 선장 일행의 모습이 담긴 그림 ‘표류조선인도(漂流朝鮮人圖)’가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돗토리현은 강원도와 교류를 추진했고 1994년 11월 자매결연을 했다. 돗토리현은 안 선장 이야기를 기념하고자 2001년 고토우라정(琴浦町)에 ‘일한우호교류공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당시 가타야마 요시히로(片山善博) 돗토리현 지사는 “선원들의 표류를 계기로 이뤄진 인연을 기억하는 것이 일본과 한국의 교류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기념공원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왼쪽)와 히라이 신지 일본 돗토리현 지사가 8일 돗토리현 현립미술관에서 열린 ‘새로운 30년을 향한 마음의 길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강원도 제공

200년 이상 이어져온 강원도와 돗토리현 간 인연이 자매결연을 기점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특별한 우정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자매결연 30주년을 맞아 양측이 공식 방문단을 꾸려 교류에 나서 새로운 30년을 약속했다.

◆새로운 30년 향한 ‘마음의 길’ 공동선언

21일 강원도에 따르면 김진태 강원도지사 등을 필두로 한 도 대표단은 이달 7일 4박5일 일정으로 일본 돗토리현 돗토리시를 공식 방문했다. 대표단은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하는 활동을 장려하는 ‘아이(愛)서포트 운동’ 15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았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인사말을 비롯한 모든 말을 일본어로 소화해 현장에 있던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통역을 맡은 심재현 도 주무관은 “김 지사가 성의를 보여주고 싶다며 두 달간 시간을 쪼개 맹연습했다”고 귀띔했다.

1819년 강원도 출신 안의기 선장 일행이 일본 돗토리현에 머물던 상황을 묘사한 그림과 이들이 돗토리현 관리에게 쓴 편지가 담긴 ‘표류조선인도’. 돗토리 현립도서관 제공

김 지사와 만난 히라이 신지(平井伸治) 돗토리현 지사도 한국말로 환영 인사를 건넸다. 히라이 지사는 “돗토리에서 김 지사를 만나게 돼 영광”이라며 “한국 시·도지사 가운데 일본어를 가장 잘한다. 정성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사를 나눈 두 지사는 돗토리 현립미술관에서 ‘새로운 30년을 향한 마음의 길 공동선언’을 했다. 여기에는 ‘두 지역이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인 인구 감소와 청년 이탈, 생활기반 부족 등을 해결하기 위해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정책을 협력해 추진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공동선언 현장에는 두 지역 의회 의장과 의원들이 참석, 지원사격을 약속해 의미를 더했다. 김시성 강원도의회 의장은 “한국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며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수 있는 세월인데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교류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앞으로 50년, 100년이 될 때까지 두 지역의 우정이 이어지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두 지역 대학생과 마을 대표들이 만나는 자리도 마련됐다. 강원지역 대학생 9명과 돗토리 대학생 10명은 수개월간 양국에서 머물며 느낀 점을 공유했다. 이들은 청년들의 수도권 이탈로 인한 지역소멸 위기에 대한 해법을 자신들의 시각에서 제시했다. 마을 대표들도 머리를 맞댔다. 강원·돗토리 30년 교류기간 동안 마을 대표들이 직접 만난 민간교류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유아 도 국제협력팀장은 “이번에 발표된 내용들은 양 지방정부 업무 담당부서에 전달돼 향후 관련 정책 수립에 참고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8일 일본 돗토리현 현립미술관에서 마술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강원도 제공

교류는 예술교류 콘서트에서 절정에 달했다. 검은 정장과 중절모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김 지사가 무대에 오르면서다. 김 지사는 음악에 맞춰 파란색 천을 위아래로 흔들며 시선을 모았다. 찰나의 순간 김 지사의 손에는 천이 아닌 파란색 우산이 들려 있었다. 서툴지만 진지한 모습에 객석에서는 환호가 이어졌다. 김 지사는 연이어 여러 갈래로 꼬인 줄을 풀어내는 마술을 선보이는 등 10분간 공연을 펼쳤다. 히라이 지사도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춤을 선보이며 화답했다.

 

◆관광·바이오산업 등 다방면서 협력 강화

강원도와 돗토리현은 관광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도와 강원관광재단은 공식 방문 셋째날인 10일 요나고시(米子市)에서 관광 교류회를 개최했다. 이날 교류회에는 김 지사를 비롯해 최성현 강원관광재단 대표이사, 황재득 도 소상공인경제특보, 최진영 청년특보, 김필수 관광수산특보 등이 참석했다. 일본 측에서는 이사카 아키라 돗토리현 관광연맹 부회장 등이 자리했다.

도와 관광재단, 돗토리현 관광연맹은 관광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광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뜻을 모았다. 도와 재단은 이 자리에서 ‘2025·2026 강원 방문의 해’를 선포했다. 강원 방문의 해는 강원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로 기획됐다. 돗토리현 144개 관광협의회는 강원 방문의 해 기간 동안 강원도를 찾아 활발한 교류 협력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최 대표는 “현재 일본에서 한국 K팝과 드라마 등 한류문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일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은 국가는 한국”이라며 “재단은 도와 함께 일본 관광객들에게 즐거움과 행복한 추억을 선사할 수 있는 다양하고 특별한 강원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분야 협력도 강화할 방침이다. 대표단은 일정 마지막 날 효고현(兵庫縣) 고베시(神·市) 의료산업단지를 찾았다. 이곳에는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경제 재건을 목적으로 조성한 바이오·의료산업 지구가 들어서 있다. 현재 360개 의료기업과 연구기관 등이 모인 일본 최대 바이오의료 중심지다. 특히 차세대 의료개발센터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혼조 다스쿠(本庶佑) 교수의 이름을 딴 연구시설로, 각종 분야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대표단은 강원도가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와 의료산업 추진 상황을 공유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주용 도 국제협력관은 “고베 우수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하는 한편 공통분야에 대한 기술교류와 공동연구 등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을 해나갈 계획”이라며 “강원도 대표 미래 산업인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새로운 국제 협력의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진태 강원도지사 “30년 지켜온 우정으로… 새로운 30년 만들어가”

 

“30년간 지켜온 우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30년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강원도와 일본 돗토리현(鳥取縣) 자매결연 30주년을 맞아 최근 일본을 방문한 김진태(사진) 강원도지사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마음의 길을 통해 새로운 30년 교류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21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히라이 신지(平井伸治) 돗토리현 지사와 나눈 특별한 우정이 담긴 대화 일부를 소개했다.

 

김 지사는 이달 9일 돗토리현에서 열린 강원도와 돗토리현 교류 30주년 기념 만찬에서 “사실 강원도와 자매결연을 하고 싶다는 일본 현들의 요청이 다수 있었다”며 “도청 내부에서도 돗토리현보다 규모가 큰 광역자치단체와 결연을 맺자는 주장이 나왔었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그때마다 당장은 새로운 친구를 만들 때가 아니라고 답했다”며 “오래된 친구와 계속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자신의 고백을 들은 히라이 지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돗토리현에도 한국 시·도의 자매결연 요청이 들어왔으나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가슴 찡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며 “강원도와 돗토리현을 잇는 하늘길, 바닷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음의 길을 통해 교류를 확대해 나가자고 제안했고, 히라이 지사도 함께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설명했다.

 

김 지사는 방일 기간 내내 하늘·바다·마음 세 가지 길을 강조했다. 하늘길은 양양·인천국제공항과 돗토리현 서부 요나고시(米子市)를 잇는 항공편을 말한다. 바닷길은 동해항에서 출발해 사카이미나토(境港)를 연결하는 국제 정기 여객선 항로를 일컫는다. 김 지사는 이번에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5년 만인 지난 8월 운항이 재개된 항로를 이용해 배편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김 지사는 “가장 핵심적인 길은 바로 마음의 길”이라며 “이번 교류에서도 마음을 나누는 일에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이번에 히라이 지사를 비롯한 일본 정계 관계자들은 ‘30년 우정을 쌓은 강원도지사라면 당연히 총리와 만나야 한다’며 (내가) 요청할 경우 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돗토리=배상철 기자 b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