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날이 추워졌어요. 어떻게 지내세요? 한 해의 끝에 다다른 기분이 드니, 문득 당신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 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시몬 베유는 말했다고 합니다.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하고 물을 수 있다는 의미래요. 그는 ‘어떻게 지내요?’라는 그 사소하며 위대한 질문을 할 때 자신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당신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라고 했어요. 이 내용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당신,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만약 당신에게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내겠어요? 불안을 떠안고 슬퍼하거나 분노하시겠어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남은 인생을 사시겠어요?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사시겠어요? 살맛 나는 생산적인 얘기나 하지, 왜 부정적인 물음을 던지느냐고 답변하실 수도 있겠네요.
저는 오늘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보았거든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룸 넥스트 도어는 눈앞의 죽음을 전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를 지켜보며 함께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말기 암 환자인 ‘마사’는 암이 자신을 삼켜버리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해요. 마사는 안락사를 실행하는 날까지 며칠 동안 자신의 친구인 ‘잉그리드’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잉그리드에게 힘겹게 당부하죠. “이 전쟁이 두렵진 않아. 하지만 혼자이긴 싫어. 내 부탁은… 네가 내 옆방에 있어 달란 거야.”
‘만일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면?’ 하는 자문을 해보았습니다. 영화처럼 서로의 결심을 존중하며 그 상황을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자신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아마 당신 주변에도 아픈 사람이 있을 거예요. 당신은 가족 중 누군가를 섬세하게 간병하며 환자를 향해 부드러운 대화를 건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 자신이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까요? 하지만 자신에게 닥쳐온 병고까지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다룬 영화를 통해 새삼스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좋은 죽음(웰 다잉)이란 잘못을 보상하고,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다”라고 쓴 글을 본 적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선량하고 정중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룸 넥스트 도어에서 희망 없는 연명치료보다는 스스로 임종일을 선택하는 마사의 태도를 두고 우리가 잘잘못을 따지긴 쉽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 사랑하는 것들에 관해 관대한 것처럼 삶을 마무리하는 여정에도 침착함과 평정심, 약간의 품위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아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겠니?” 이런 질문을 저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곧바로 만나고 싶은 사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사과해야 할 사람, 복수하고 싶은 사람 등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죠. 꼭 쓰고 싶었는데 아직 쓰지 못한 글, 가보고 싶었는데 가지 못한 장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도 생각났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며 깨닫게 된 것은 특별함이 아닌, 일상의 소중함이라고 할까요? 며칠 후면 죽을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건 친구와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일, 책을 사러 서점에 가는 일, 새소리 들으며 미소 짓는 일, 눈 감고 온몸으로 햇살을 느끼는 일, 흩날리는 눈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일 등 수없이 반복되었던 일상이었어요. 오늘 바로 이 순간들이야말로 죽음을 앞둔 이들이 필사적으로 그리워할 일이란 걸 알게 되었죠.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지만 삶은 아름답습니다. 이 겨울의 초입에 당신이 잘 지내시기를 바라봅니다.
김이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