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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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변화 맞춰 동거돌봄제 논의 중… “사회적 합의 필요” [심층기획-저출생 시대 ‘결혼 공포증’]

가족형태로 인한 차별 없게 법령 개선
6년 전부터 정부 차원 논의 시작됐지만
“아직 예민한 문제” 정치권 등 신중론

비혼출산과 동거돌봄제도에 관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는 2018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포럼에서 처음 제기됐다. 당시 논의된 내용은 6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진척이 됐을까.

21일 저고위 등을 취재한 결과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등 비혼출산과 관련한 법제 개선은 이뤄졌으나,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지지 않은 두 성인을 ‘가족관계’로 인정하는 동거돌봄제도 도입을 위한 정부 사업은 사실상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7월9일 저고위와 여성가족부 등은 ‘차별 없는 비혼출산, 그 해법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포럼을 개최하고, 가족 형태로 인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령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선 위기 임신·출산 지원 강화 등 비혼출산과 관련한 법제뿐 아니라, 가족정책의 관점 변화를 목적으로 한 ‘생활동반자법 제정’도 제안됐다. 근본적으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동거돌봄제도의 필요성은 2020년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현행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명시돼 있기도 하다.

기본계획을 보면 “가족 관련 법률·복지제도는 법률혼 중심의 ‘정상가족’ 규범을 근간으로 해, 다양한 가족과 아동에 대한 수용과 존중이 부족하다“며 “다양한 가족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가족으로서 상호 권리와 의무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사회적 수용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지난해 발표된 기본계획의 시행계획에는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시행계획에는 ‘(가칭) 생활 돌봄공동체법 관련 법제 마련’이라는 목표가 규정돼 있다. “서로 돌보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정의, 보호내용 방식 절차 등을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2021년 시작된 해당 사업은 여가부를 주무부처로 했는데, 상세한 추진 방안은 건강가정기본계획 시행계획에 담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여가부가 발표한 건강가정기본계획 시행계획에 법제 마련과 직접 관련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여가부 관계자는 “다양한 가족 형태와 관련해 불편 사례를 발굴하기 위한 과제들이 시행계획에 있다”면서도 “(법제 도입을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과제들이 있다 보니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며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저고위는 동거돌봄제도 도입과 관련한 사업 현황을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저고위 관계자는 “너무 예민한 문제고 이를 두고 부처 간 입장도 달라 취재에 응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시대적 변화를 감안해 신중하게 논의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지난해 6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동거돌봄제 도입 입법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전통적 혼인 개념을 흔들 수 있는 내용”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과거 이념적 가치 판단의 문제로 여겨졌던 비혼출산을 인구문제 차원의 이슈로 접근하는 인식도 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보수성향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지사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 콘퍼런스에서 공개적으로 동거혼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비혼 커플에게도 혼인 부부와 동일한 세금, 복지 혜택을 부여해 결혼 부담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윤준호·박유빈·안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