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A씨는 얼마 전 고객의 막말과 폭력적인 행동을 맞닥뜨리게 됐다. 현금으로 계산하겠다고 한 고객에게 동전 액수가 모자란다고 말하자 그 고객은 폭언과 함께 동전을 계산대에 던지듯 쏟아냈다. 동료 직원들의 제지로 손님은 제대로 계산을 마친 뒤 업장을 떠났지만, A씨는 그 뒤로 나이 든 남자 손님이 큰 목소리로 말을 되물으면 자꾸만 그때 생각이 나 심장이 뛰었다.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했다. A씨는 정신질환으로 산재 처리가 가능할지 궁금했다.
23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보면 업무상 재해는 크게 △업무상 사고 △업무상 질병 △출퇴근 재해로 구분된다. 그중 업무상 질병 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이 포함된다. 눈에 보이는 업무상 부상이나 화학물질 및 분진 등 건강 장해를 일으키는 요인에 노출돼 발생한 질병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질병도 산재 처리 대상이다. 따라서 A씨는 사업주에게 산재 처리를 요구할 수 있다.
A씨처럼 고객 응대 과정에서 폭언·폭행 등에 노출되기 쉬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도 따로 마련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가 그 근거다. 이 법은 ‘고객의 폭언,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사업주는 업무와 관련해 고객 등 제3자의 폭언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 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필요한 조치로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시간 연장 △건강 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등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도 불린다. 2018년 10월 시행됐는데 여전히 이 법에 대해 모르거나, 피해를 봐도 참는 노동자가 다수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최근 직장인 10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16%는 민원인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피해자 중 61.9%는 피해를 신고하거나 회사에 대책을 요구하는 대신 ‘참거나 모르는 척’했고, 25.6%는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 대책을 요청했다’는 피해자는 26.3%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와 국민권익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피해자는 이를 훨씬 밑도는 6.9%에 그쳤다. 이밖에 회사가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은 53.6%,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모른다는 대답은 63.9%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