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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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첫 남미 순방이 남긴 과제…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 준비하는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5박8일 일정의 첫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순방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앞서 글로벌 대응 전략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특히 그동안 소원했던 중국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면서 정부의 주력 외교 노선인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중심의 외교 전략 지평을 중국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APEC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과 전략적 관계개선 시동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발해 한국으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G20 폐막식이 열린 이날 제3세션에서 ‘디지털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또 마타멜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우려와 경제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회원국들은 투명한 다자무역 보장 등을 지지하는 85개항의 공동선언문도 채택했다.

 

이번 순방 기간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이시바 시게루(習近平) 일본 총리 등 주요 4강 수장 중 3명과 양자회담을 갖고 특히 미·일 정상과는 다자 회담을 연이어 개최했다.  특히 15일 리마에서 시 주석과 2년 만에 마주 앉아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개선에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양 정상은 내년 서로를 초청하며 정상회담 개최를 약속했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보여온 기조와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18일 공개된 브라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은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의 전략은 한 번도 바뀐 적 없다”며 “국익을 중시하는 외교”라며 외교정책 전환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지만 그간의 발언과 행동에서 이미 정책 전환이 일어났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임기반환점을 앞두고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직후 참가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다 한 중국 매체 기자가 자신에게 질문권이 오지 않아 아쉬웠다고 하자 “중국과는 협력을 잘 해 나갈 것”이란 취지로 답변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중국이 한국인 대상 비자면제 조치를 전격 발표한 것에 대한 답변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에이펙 정상회의 계기에 시 주석의 방한이 유력하다. 문제는 그에 앞서 윤 대통령이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것인지다. 문재인·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모두 중국을 찾았지만 지난 10년간 시 주석은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외교·안보팀은 내년 한·중 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두고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소 문제에 양측 모두 민감하기 때문이다. 자칫 한국 정상이 계속 중국을 방문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는 점을 가장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의 관계개선 국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한·미·일 협력은

 

이번 에이펙과 G20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당선인의 2기 체제 출범을 앞두고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다자무역과 기후변화 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이 내세운 보호무역주의와 기후변화는 허구라는 인식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각국 정상들은 다자회의 계기에 이런 메시지는 냈지만 향후 트럼프 2기 행정부와 협상 국면에서 이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수정하고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특히 한국은 그동안 이어온 한·미·일 삼각협력 구도를 트럼프 정부에서도 이어가야 하는 숙제를 부여받았다. 이를 위해 이번 에이펙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은 이를 정례화시키기 위한 사무국 설립에 합의했지만 트럼프 신행정부에서 이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대체로 현재의 한·미·일 협력 구도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통화에서 “트럼프 당선인 입장에서도 한·미·일  협력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며 “정권이 바뀌어 성향은 다르지만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 협력이 계속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도 1기 행정부 시절 한국에 공을 들였던 부분이 한·미·일 공조였는데 당시 문재인정부에서는 이 기조를 잘 받아들이지 않아 불만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우크라 전쟁 평화협정 이후

 

이번 남미 순방에선 ‘4강 외교’라는 그동안 한국 외교에서 잠시 잊혔던 개념이 다시 부상했다. 미국, 일본, 중국 정상과의 릴레이 회담에 이어 러시아와의 긴밀한 소통 사실을 윤 대통령이 먼저 공개하면서다. 러시아와의 정상급 공개 접촉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정부의 공식 라인이 소통하고 있다고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순방 계기 14일 공개된 스페인 국영통신사 에페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필요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주러시아 대사관도 러시아 외교부, 정부와 필요한 얘기를 수시로 하고 있다”며 1.5트랙(정부+민간) 뿐만 아니라 민간 교류, 에너지 수입 등 경제 협력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페루 리마 국제컨벤션센터에서 31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윤 대통령,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존 리 홍콩 행정장관, 의장국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뒷줄 오른쪽부터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 주석,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린신이 대만 총통부 자정,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뉴기니 총리. 연합뉴스

이는 정부가 대외적으로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실제 러시아와는 물밑 소통을 이어가며 협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러시아의 고급 군사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처럼 대(對) 러시아 외교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결국 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를 대비한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평화협정 전망과 관련해 “지금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남은 불예측성이 다가오기 전에 한 두 달 정도 주어져 있는 시간 사이에 전투가 더 격해질 것”이라며 “한국도 우방들과 함께 이 문제를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판단을 내리겠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장거리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의 사용 승인 정보를 미리 공유해 준 것이 우리 측에 대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여부를 빨리 결정하라는 우회적 압박의 제스처도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복합적인 상황에서 정부가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자 외교가에서는 윤석열정부가 미국 우선주의 ‘가치외교’ 노선에서 ‘실용주의’나 ‘균형외교’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