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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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고택에서 빚은 막걸리…“지금은 젊은세대도 찾는 ‘핫플’ 됐죠” [현장]

매년 4000여명 방문…찾아가는 양조장 ‘금풍양조’
양조장 역사·문화 가치 인정받아 2022년 시 문화재 등재
싱가포르 현지와 협업 막걸리 첫선 “해외진출로 한국 전통주 가치 알릴 것”

“단순히 술만 빚어 파는 양조장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죠. 꼭 술을 사러 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난해 4000여명이 다양한 경험을 즐기러 이곳을 찾았어요.”

 

양태석(49) 대표가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 박윤희 기자

‘따뜻한 샘물이 나는 마을’이란 뜻을 가진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는 10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양조장이 있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양태석(49) 대표는 이곳을 단순한 막걸리 제조장이 아닌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양 대표는 무엇보다 ‘막걸리 맛’에 진심이다. 할아버지가 쌀과 물, 누룩으로만 막걸리를 빚던 방식을 계승하기 위해 3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무(無)농약, 무(無)감미료,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다.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 탄산감도 없앴다. 탄산이 들어가면 병뚜껑에 미세한 구멍을 내야 하는데, 운반 과정에서 막걸리가 샐 수 있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탁주를 생산하는 지역 양조장이 증류주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과 달리 막걸리로만 승부를 볼 생각”이라며 “대신 금풍양조를 누구나 찾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금풍양조 외관. 박윤희 기자

 

◆ 막걸리 제조·판매하던 공간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지난 15일 찾아간 금풍양조장은 막걸리 외에도 다양한 체험과 즐길거리가 많았다. 1층은 사무실·생산실과 함께 막걸리 체험과 강연을 하는 ‘풍다방’, 2층은 금풍양조 100년 서사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전시실로 활용하고 있다. 

 

카페 형태로 꾸며진 1층 판매소에선 손님들의 인증숏이 프린팅된 ‘아인술패너’를 시음해 볼 수 있다. 인삼이 들어간 막걸리 ‘금학탁주 그린’이 주재료다. 

 

이곳에서는 시그니처 ‘금풍양조 6.9’와 금학탁주 골드·그린·블랙 라인 등 총 4가지를 만날 수 있다. 매달 생산량은 3000병 내외다. 강화도에서 나는 무농약 쌀과 지하수를 이용해 감미료를 넣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를 제조한다. 

 

금풍양조는 버려지는 커피 원두백을 재활용해 막걸리 파우치를 제작해 사용한다. 파우치 막걸리는 양조장에 방문한 고객에게만 판매한다. 6.9도 막걸리가 페트병과 파우치 두 종류로 출시된다. 

 

굿즈 코너에선 막걸리를 빚을 때 쓴 쌀포대를 활용한 가방이나 술지게미로 만든 향초와 비누, 금풍이 얼굴이 새겨진 술잔과 막걸리 키트 ‘컵막’(막걸리+컵라면)등 아이디어 넘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풍양조 막걸리 밀키트 '컵막'. 박윤희 기자

컵라면처럼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컵막’은 차 브랜드 ‘차완’과 협업해 만들었다. 일반 생수를 쓰는 타브랜드와 달리 차(茶)를 붓는 방식이다. 차는 ‘쑥차’와 ‘순무차’ 두 종류로, 모두 강화도 특산물이다. 

 

양 대표는 금풍양조장의 새 정체성을 갖춰나가면서도 누구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했다. 금풍양조장은 2023년 인천관광공사와 2024년 한국관광공사가 인정한 웰니스 관광지다. 

 

양 대표는 “지난달에만 400명정도가 금풍양조를 찾았다. 막걸리를 사러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막걸리 체험이나 그냥 구경 오시는 분들도 많다. 누구든 와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건축양식 보존+신기술 접목…공간에 ‘추억’을 입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이곳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빛바랜 나무계단을 밟고 몇 발자국 올라서자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옛 방식으로 밀가루를 말리던 장소를 그대로 살려 100년 역사를 간직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금풍양조장은 기록상으로는 1931년 건축물대장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1920년대부터 양조장이 운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2층은 옛 방식으로 밀가루를 말리던 장소를 그대로 살려 100년 역사를 간직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윤희 기자

양 대표는 “금풍양조장 창업주인 김학래씨가 양조장을 인수할 당시, 할아버지는 온수리에서 정미소를 크게 운영하셨다. 할아버지는 쌀과 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다 보니 술 사업까지 하셨고, 이후엔 아버지와 제가 이어받아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고 말했다. 

 

양 대표가 처음부터 가업을 잇겠다고 다짐했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하던 2011년부터 10년간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줬고, 노후한 건물이 방치돼 자칫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양대표는 서울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2020년부터 이곳 운영을 맡았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선대부터 지켜온 막걸리에 대한 연구와 시설 리뉴얼이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양 대표는 막걸리 제조에 대한 지식이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전문 교육 기관에 다니고 컨설팅도 받았다. 

 

양 대표는 “100년 전 양조장 모습을 그대로 전시해 사람들이 구경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이곳이 하나의 관광지로 등록될 수 있었던 이유”라며 “공간에 ‘추억’을 입혀 다양한 테마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풍양조장 2층은 1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전시실로 운영되고 있다. 박윤희 기자

금풍양조장은 개항기 이후 지역 산업 변천사가 담긴 건축물로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10월 인천시 등록문화재로 등재되기도 했다.

 

◆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K-전통주…“해외진출로 한국 전통주 가치 알릴 것”

 

금풍양조장은 매달 200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찾아올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만큼 한국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양 대표는 해외 팝업이나 양조장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 8일엔 싱가포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아키라백(Akira Back)’과 함께 싱가포르 최초 막걸리 디너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금풍양조장 이름을 널리 알렸다. 

 

싱가포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아키라백(Akira Back)’을 찾은 양 대표. 금풍양조 제공

이번 행사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결합한 인천 막걸리를 세계에 소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행사에 참석한 싱가포르의 주요 미식 전문가들은 금풍양조장의 막걸리를 “한국 전통주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현지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아키라백 빌 홍(Bill Hong)헤드 셰프는 “한국적인 스타일의 다이닝 메뉴와 한국 전통주를 싱가포르에 선보이는 최초의 자리라 많이 긴장됐지만 사전 예약이 조기 완료될 정도로 한국적인 음식, 술,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여줘 놀랐다”며 앞으로 두 기업 간 다양한 협업 프로모션을 예고했다.

 

양 대표는 전통주의 해외 진출을 지속해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양 대표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막걸리 디너를 넘어, 한국 전통주가 세계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며 “다양한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전통주의 가치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