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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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군인 추방·트랜스젠더 女화장실 금지”…美 성소수자 권리 논쟁 격화

트럼프, 트랜스젠더 미군 전원 추방 계획
트랜스젠더 의원 女화장실 금지 법안도
미군.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군 내에서 모든 트랜스젠더 군인을 추방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에서는 트랜스젠더 의원의 의사당 화장실 사용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간 격돌이 이어지는 등 미국에서 성소수자 권리를 둘러싼 ‘문화전쟁’이 다시 촉발되는 양상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5일(현지시간) 복수의 미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이 모든 트랜스젠더 군인을 퇴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서명할 행정명령에는 미군에서 복무 중인 현역 트랜스젠더 군인들을 질병 등으로 인해 군 복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의병 전역시킨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트랜스젠더들의 군 입대도 금지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미군 내 일부 고위 장교들이 군대의 전투력보다는 다양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이들이 추진해 온 이른바 군 내 ‘워크(woke·진보 어젠다 및 문화를 통칭하는 말)’ 문화를 비판해왔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1기 행정부 당시인 2017년 8월 트랜스젠더의 신규 입대를 금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1월 취임 닷새 만에 이 행정명령을 철회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 폭스뉴스 진행자도 군이 트랜스젠더 장병을 돕는 것을 ‘트랜스 광기’의 예시라고 비난했다.

 

헤그세스 후보자는 군대 내 약하고 여성적인 리더십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트럼프 당선인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트랜스젠더 군인들은 수십 년간 복무한 이들이라도 직책을 잃을 수 있다고 국방부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 국방부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현재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군인은 약 1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당선인의 트랜스젠더 군인 추방 계획에 대해 군 내 다양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1만 명이 넘는 군인들을 한꺼번에 추방하게 되면 오히려 미군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소수자 군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미국 현대 군인 협회’의 레이철 브라너먼 국장은 “지난해 군의 모병 규모가 목표보다 4만1000명이나 부족했던 점을 감안할 때 1만5000명이 넘는 군인을 갑자기 전역시키는 것은 전투 부대에 행정적 부담을 더하고 부대 결속력을 해치며 기술 격차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라 맥브라이드 미국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내년 1월 3일 개원을 앞둔 미국 의회에서는 의사당 화장실 사용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공화당 간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공화당이 민주당을 겨냥해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화장실 이용을 강제하는 결의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이번 결의안은 내년 1월 취임 예정인 세라 맥브라이드 당선자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맥브라이드 당선자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방 하원의원으로 2020년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이어 이번에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결의안을 발의한 낸시 메이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맥브라이드는 발언권이 없다”며 “그는 생물학적 남자이며 여자 공간, 여자 화장실, 탈의실에 속하지 않는다. 이게 끝”이라고 직격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여자 화장실에 남자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가세했다.

 

이에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멜라니 스탠스베리 민주당 하원의원은 “내 여성 동료들이 다른 동료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역겹고, 부끄럽고, 무책임하고, 반민주적”이라는 입장을 냈다.

 

맥브라이드 당선자는 “매일 미국인들은 자신과 다른 삶의 여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러 가고, 존중을 토대로 그들과 교류한다”며 “나는 의회 의원들이 같은 친절을 베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성소수자 권리를 둘러싼 문제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첨예한 이슈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가 일종의 ‘좌파 의제’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는 트랜스젠더 규제 법안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최소 11개 주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공립학교 여자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을 채택했으며, 일부에서는 정부 시설도 사용 금지 구역에 포함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7월 트랜스젠더 권리 문제를 겨냥한 정치 광고에 1900만달러(약 265억원)를 쏟아 부으며 강경 정책을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공화당이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의사당 건물로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