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림자 세금’이라고 불리는 부담금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논의가 지연되면서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는 부담금 등을 정비해 2조원 가량의 국민·기업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18개 부담금 폐지를 추진하며 관련 법안을 제출했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학교용지부담금, 영화부과금, 출국납부금 3개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나머지는 논의가 언제 시작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부담금은 수수료 등 반대급부 없이 특정한 공익사업 수행을 위해 조세 외에 공공주체가 부과하는 금전지급 의무를 말한다. 영화 상영권 입장권에 들어있는 영화발전기금처럼 이용자가 잘 모르고 내는 준조세 성격이 강하다. 부담금은 2022년 7조8000억원에 그쳤지만 2022년 22조4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20년 새 3배 넘게 늘었다. 정부는 91개 부담금을 전수 조사해 국민들이 납부 사실을 모르거나 민간경제를 위축시키는 부담금이 상당하다고 보고 올해 3월 18개 부담금을 폐지하고, 14개를 감면하는 내용의 ‘부담금 정비 및 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중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등 12개 부담금 감면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18개 부담금 폐지를 위한 21개 법률 폐지·개정안을 제출하며 관련 논의가 국회에서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결손에 따른 수입 감소와 사업 차질 등을 이유로 폐지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학교용지부담금은 폐지 대신 50%를 경감하는 내용의 야당안이 발의돼 지난 5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학교용지부담금은 분양사업자에게 분양가격의 0.8%(공동주택 기준)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저출생으로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폐지 요구가 대두됐다. 학교용지부담금 폐지로 분양가가 내려갈 것이란 점도 정부가 기대하는 긍정적 효과다. 당초 정부는 전면 폐지를 추진해왔지만, 의회 지형을 고려하면 야당안인 ‘50% 경감안’이라도 수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화부과금은 영화 지원 축소, 상징성 훼손 등을 이유로 야당에서 폐지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영화 관람료의 3% 수준인 영화부과금은 티켓값 1만5000원 기준 약 500원에 해당한다. 정부는 부담금 폐지 시 500원 이상으로 관람료 인하를 유도할 예정이다. 요금이 낮아지면 영화산업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부담금을 폐지해도 영화발전기금은 유지하고 별도 재원으로 차질 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야당에서 영화부과금 징수 요율을 명확히 규정하는 법안을 별도로 발의한 상태라 논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출국납부금(1000원) 폐지 관련 정부안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지난 8일 상정된 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연내 법안 통과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상임위원회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일부 부담금은 세입 예산 부수 법안으로 예산안과 함께 논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담금 개편안으로 연간 2조원의 국민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봤는데 시행령 개정으로 1조5000억원 경감 효과가 났다”며 “폐지할 경우 5000억원 경감 효과가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