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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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역구 ‘쪽지예산’ 수천억 챙긴 의원들, 혈세가 쌈짓돈인가

지난 4년간 20개 지방 이양사업에 250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이 이른바 쪽지예산 형태로 부당 지원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이 어제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실태’에는 지역 현안사업 예산을 예산 심의 과정 막판에 슬그머니 끼워 넣는 쪽지예산의 폐해가 고스란히 담겼다. 국회는 해마다 예산 시즌이면 쪽지예산 근절을 외쳐왔지만, 빈말에 그쳤다. 올해도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증감액의 상당액이 회의록도 남지 않는 밀실에서 쪽지예산 형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스럽다.

국고보조금 부당 지급 사례 중 13개 사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의원실을 통해 보조금 지원을 요구한 경우였지만 7개 사업은 의원실이 독자적으로 보조금을 편성한 사례였다. 헌법 57조는 ‘국회가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항목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삭감한 세출예산을 증액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국회법(84조5항)도 있다. 국가보조금 법령에 저촉되는 쪽지예산 끼워 넣기 행태는 정부 예산편성권의 침해이자 입법권 남용이나 다름없다.

쪽지예산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현행 보조금법 시행령의 모호한 규정 때문이다. 관련법 시행령에 따르면 문화관광자원 개발 조성 사업은 국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명목의 관광자원 개발 사업은 국비 지원이 가능하다. 체육진흥시설 지원사업도 국비 지원에서 제외됐으나, 기초생활체육 저변 확산 지원사업은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 식의 법 적용이다. 국가 예산을 눈먼 돈으로 인식하게 만들 여지가 적지 않다. 감사원이 이런 지방 이양사업의 세부 내용이 명확히 구분되도록 보조금법 시행령을 정비하라고 기획재정부에 통보했다고는 하나 미덥지 못하다.

쪽지예산은 국가 예산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주범이다. 땀 흘려 일한 국민이 낸 세금을 도둑질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런 규정에 아랑곳없이 쪽지예산을 남발해왔다. 여야가 짬짜미로 예산을 나눠 먹는 관행은 정치권 실세들이 더했다. 혈세를 쌈짓돈 쓰듯 하는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할 유산이다. 정부는 국고보조금 지급 및 사용 원칙을 더욱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국회도 예산 집행을 감시하기 전에 쪽지예산 등 무분별한 편법 편성부터 없애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