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올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 문제는 그간 포탄 지원을 시작으로, 군사교육 관계자나 지휘관 파견, 지상군 파견 관련 정황이 점진적으로 드러나고 그 중 일부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 확인해왔다. 북한 당국이 러-우 전쟁에 “올인”하고 있다는 종합적 평가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김 장관은 지난 21일 서울정부종합청사 통일부 집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진 북한의 포탄이 갔고, 미사일이 갔고, 병력이 갔으며 최근 170㎜자주포, 240㎜방사포가 수출된 걸로 확인되고 있다”며 “이처럼 북한의 포가 직접 가게 될 경우엔 이걸 운용하는 병력도 갔을 가능성이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비준을 공개하고, 많은 무기, 병력까지가는 걸 보면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올인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에 북한 병력 파병을 요청했다는 것은 러시아가 전황에서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라며 “외교적으로 고립돼있는 것을 타파하기 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군 현황 관련 “북한군은 1만여명이 파병돼 있고 주력은 특수부대 11군단으로 본다”며 “전장 배치가 완료, 전투에 참여 중으로 평가하고 한다”고 했다. 또 “파병돼 있는 북한군을 이끄는 지휘관들 신원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보도가 있지만, 정부는 계속 확인하고 있는 상황으로, 시간이 좀 지나야 확인할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최근 비준된 것과 관련해 “양측이 국내법적 절차를 완료한 것”이라며 “조금 지켜봐야겠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직접 방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방러 시기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 신행정부 출범이 전이 될지, 이후가 될지 그런 것들이 변수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면 1949년 3월에 김일성이 모스크바 방문했는데 그때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고난 뒤 방문한 것이었다”며 “어떤 큰 계기를 전후해 이뤄지지 않겠나 전망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단호한 입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북한이 파병으로 군사적·경제적 반대급부를 얻어 한국에 위협이 될 가능성뿐 아니라 한국이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상임이사국은 유엔 헌장에 따라 세계평화와 질서를 유지해야되는 국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주권존중, 영토보존원칙을 어기고도 향후 사태가 러시아의 의도대로 된다면 ‘현상을 변경하려고 하는 국제정치의 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38년에 뮌헨조약이 체결될 때, 히틀러에게 체코의 일부 지역을 양보하면 히틀러가 대외에 유화 정책을 펼 줄 알았는데 결국 2차대전으로 귀결됐다”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과거 그런 역사적 전쟁 경험에서도 심각하게 봐야된다”고 했다.
김 장관은 “전후 국제질서에서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는 국제정치질서의 소비자, 수혜자로서 세계 10위 경제국으로 올랐다”며 “결국 대한민국도 수혜자로부터 벗어나 국제정치질서를 유지하는 기여국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을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관지어본다면, 국제정치질서에 기여하는 국가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파병 문제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 이면과 교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의존하는 안보’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미사일 사거리도 마음대로 쏠 수 없는 우크라이나였지만 지금은 각성한 국민이 집에서 드론을 만들고 밤에 군용차가 와서 수거해간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그렇게 만든 드론이 100만대 이상이라고 한다. 총력전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조야 일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미대화가 이뤄지면 북핵 완전한 폐기가 아닌 군축 협상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 그는 “우리 정부로선 군축회담은 절대로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이 NPT탈퇴 조건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NPT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북한의 핵이란 건 우리에게 실존적 위협”이라며 “NPT조약 10조를 보면, 국가안보 상의 실존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는 조약 당사국이 탈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조약국들의 권리다”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대한민국은 NPT체제 유지가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에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비확산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이 점을 국제사회가 분명하게 이해하고 완전한 북핵 폐기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 성격에 대해 “미국우선주의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미국혼자주의’나 ‘이념적 고립주의’가 아니라, 굳이 이름붙인다면 ‘타산적 국제주의’”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동맹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이든 나토든 기존 동맹을 중요 파트너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1차대전 직후 고립주의로 갔고, 2차대전 이후엔 국제주의 외교노선을 걷고 있다”며 “지금은 다만 미국 동맹국들이 각국 경제수준에 맡게 국방비와 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해야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일방적 수혜자가 아니라 국방비와 미군 주둔비 등에 상당한 부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을 잘 조정, 합의해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 윤석열 정부가 8·15통일독트린을 통해 흡수통일 노선을 천명했다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 반박했다. 김 장관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정부는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우리가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도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 자체가 위협”이라며 “북한 정권은 그래서 흡수통일을 당할 거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체제의 안정성과 관련해 “정치권력의 차원에서는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아래로부터 북한 사회가 변하고 있어 사회적으로는 불안정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올해 초 펴낸 경제인문사회실태인식보고서에 실린 북한의 시장화, 개인주의화, 외부정보 확산 등 동향을 근거로 “북한 주민의 의식이 변하고 있다”며 “권력의 힘과 시장의 힘, 권력이 강조하는 집단주의적 인식과 개인주의적 인식, 당국의 주체문화와 한류 등 대안적 문화가 각각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의 2국가론(민족간 관계가 아닌 별도의 두 국가)의 등장 역시 “북한 주민 의식 변화에 따른 한국사회에 대한 동경심 차단용”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 전체,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당한 불안요인이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