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2년여.
식품업계 일부 기업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오너 3세가 입사 후 임원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보통 직원이라면 입사 후 대리가 되는데도 부족한 짧은 시간이다.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승진 속도에서 근래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오리온[271560] 3세인 담서원 상무다.
화교 출신의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오너2세 이화경 부회장 부부의 장남인 담 상무는 1989년생으로 오리온 입사에서 임원까지 1년 반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2021년 7월 오리온의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핵심 부서인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해 1년 5개월 만인 이듬해 12월 인사에서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올해 35세인 담 상무는 10대 시절인 20여년 전부터 재계의 미성년 주식 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담 상무는 지주사 오리온홀딩스[001800] 지분 1.22%와 2018년 증여받은 오리온[271560] 지분 1.23%도 갖고 있다.
담 상무는 올해 앞서 오리온이 해외법인을 통해 지분을 인수한 리가켐바이오[141080]의 사내이사로도 합류했다.
이에 따라 담 상무는 오리온과 리가켐바이오[141080]에서 모두 수억원의 보수를 받게 됐다.
리가켐바이오의 지난해 기준 등기이사 1인당 평균 보수액은 3억원이다.
오리온의 지난해 미등기임원 16명의 연간급여 총액은 117억원이었고 1인 평균 보수는 7억3천만원이다. 그러나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이 각각 30억원과 24억원을 받은 것을 빼면 나머지 14명의 평균 보수는 4억원대다.
'불닭'으로 잘 알려진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의 오너가 3세인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CSO)도 지난 2020년 20대에 임원이 됐다. 전 본부장은 김정수 부회장의 장남으로 1994년생이다.
지난 2019년 25세에 삼양식품[003230]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해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하며 임원이 됐다.
당시 부친인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전 본부장이 예상보다 일찍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올해 서른살인 전 본부장은 입사한 지 4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상무로 승진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지난해 이사 직급을 폐지하고 상무보 직급을 신설하면서 임원 체계를 개편했다.
매일유업[267980] 오너 3세로, 김정완 회장의 장남인 김오영씨는 2021년 10월 매일유업 생산물류 혁신담당 임원(상무)으로 입사한 뒤 2년 6개월 만인 지난 4월 전무로 승진했다.
김 전무는 1986년생으로, 2013년 신세계그룹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뒤, 이듬해 정직원으로 전환돼 재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김 전무는 매일홀딩스[005990]와 매일유업 지분을 0.01%씩 갖고 있다.
삼양그룹의 경우 김윤 회장의 장남인 김건호 삼양홀딩스[000070] 사장이 지난해 말 사장에 선임돼 '오너 4세' 경영의 신호탄을 쐈다. 1983년생인 김 사장은 지난 2014년 삼양사[145990]에 입사해 10년 만에 사장까지 올랐다.
농심[004370] 오너 3세로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은 지난 25일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1993년생인 신 전무는 2019년 사원으로 정식 입사한 사례로, 지난 2022년 2년 10개월 만에 구매담당 상무로 승진한 바 있다.
오뚜기[007310]는 함영준 회장의 아들인 함윤식(33)씨와 딸 함연지(32)씨가 모두 회사에서 일하며 '가족 경영'을 하고 있으나, 두 자녀는 아직 임원이 아니다.
오너가 3세인 함윤식씨는 지난 2021년 오뚜기에 사원으로 입사해 현재 경영관리 부문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함연지씨는 올해 초 오뚜기 미국법인인 오뚜기아메리카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지난 5월부터 오뚜기아메리카에 입사해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함 회장은 지난해 11월에는 사돈이자 연지씨의 시아버지인 김경호 전 LG전자 부사장을 글로벌사업본부장(부사장)으로 영입하며 가족 경영을 더 강화했다. 오뚜기의 최대주주는 함 회장(25.07%)이고 윤식, 연지씨가 각각 2.79%, 1.07%를 보유하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고속 승진에 대해 "3세가 책임감 있게 한 파트를 맡으려면 그에 맞는 위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통 대기업그룹의 경우 오너일가 자녀는 입사 후 능력을 입증받는 성과를 쌓거나 수년간 경영 수업을 받는 등의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식품그룹처럼 재계 10위권 밖의 그룹 오너 자녀의 경우 상대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덜 받다 보니 이렇다할 검증 절차 없이 초고속 승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기업 오너가 일원이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원으로 승진해 경영까지 하려면 검증이 필수라고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평량 위평량경제사회연구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오너가 3, 4세의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입사한 지 2∼3년 안에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직으로 승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며 "기업 내에서 자리를 두고 다른 사람과 경쟁시키고,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젊은 자녀나 경험이 일천하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기업 경영을 하는 경우에 기업 전체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다"며 "자손이라도 경영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독일 머크사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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