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은 2011년 창단 후 6시즌 만에 유니폼에 별 3개를 달 정도로 빠르게 신흥 명문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2017~2018시즌 챔프전 준우승을 끝으로 챔프전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이후엔 봄 배구 초대장마저 받아들지 못하는 신세다.
흑역사를 뒤로 하기 위해 IBK기업은행은 2023~2024시즌을 마친 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큰 손으로 나섰다. FA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힌 공수겸장의 아웃사이드 히터 이소영(30)에게 계약기간 3년, 총액 21억원(1년 연봉 4억5000만원, 옵션 2억5000만원)을 안기며 영입에 성공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외발 이동 공격이 돋보이는 미들 블로커 이주아(24)도 계약 기간 3년, 총액 12억원(1년 연봉 3억3000만원, 옵션 7000만원)을 약속하며 데려왔다.
국내 선수 전력 보강을 탄탄히 했으니 이번엔 외국인 선수 차례. 2021~2022시즌 도중 IBK기업은행의 지휘봉을 잡아 어느덧 여자 프로배구 사령탑 4시즌째를 맞이한 김호철 감독의 안목이 적중했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4순위 지명권을 받아든 김 감독은 두바이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빅토리아 댄착(우크라이나)을 선택했다. 191cm의 좋은 신장과 빠른 팔 스윙을 보유한 빅토리아를 두고 김 감독은 두바이 현장에 가기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명장’의 혜안은 역시 탁월했다. 빅토리아는 26일 기준 여자부 득점 1위(298점), 공격 종합 3위(42.04%), 서브 1위(세트당 0.564개)에 오르며 단숨에 여자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등극했다. 빅토리아가 코트 오른쪽을 든든히 지켜주니 팀 전체의 공격력에서도 시너지가 나는 모양새다. 특히, 어깨 부상 중인 이소영 대신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나서고 있는 6년차 육서영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공격과 리시브에서 확실한 스텝업을 이뤄냈다. 이주아도 속공 5위(42.59%), 블로킹 10위(세트당 0.564개)에 오르며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전력 보강 카드들이 제대로 먹힌 결과 IBK기업은행은 선두권 판도를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26일 김천 도로공사 원정에서 세트 스코어 3-0 완승을 거두며 파죽의 6연승을 달렸다. 승점 21(8승2패)가 된 IBK기업은행은 현대건설(승점 21, 7승3패)을 승률에서 앞서며 2위로 점프했다. 흥국생명(승점 26, 9승)-현대건설의 양강체제로 가는 듯 했던 여자부는 IBK기업은행이 합세해 3강 구도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IBK기업은행의 현재 전력이 100%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깨 부상 여파가 아직 남은 이소영이 지금은 후위 세 자리만 수행하는 교체 멤버로 뛰고 있는데, 이소영이 정상 컨디션을 회복할 경우 전력이 훨씬 더 탄탄해질 수 있다. 현재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인 육서영과 황민경에 이소영이 더해지면 김 감독이 상대팀의 스타일이나 상성에 맞게 세 선수를 골라 쓸 수 있다. 통큰 투자와 사령탑의 기막힌 안목, 시즌 초반 IBK기업은행을 관통하는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