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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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빅테크 ‘AI·K클라우드’ 눈독… 위험 분산·협력 나서야 [심층기획-트럼피즘에 조기경보 켜진 K산업]

⑦ ‘먹구름’ 드리우는 IT 업계‘

‘해외서 견제’ 기술기업들 친화정책 기대
각 국가들 규제장벽 철폐 압박 거세질 듯
AWS·MS·구글, 공공 클라우드 시장 넘봐
국내 사업자들 위기… ‘AI G3’ 목표도 차질

망 무임승차 방지법·‘CSAP 인증’ 등 쟁점
‘AI 기본권’ 제정 글로벌 수준 규범 정립
다각적인 국제 협력·경쟁력 제고 나서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향후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첨단바이오와 양자 등 과학기술분야의 패권을 향한 미국의 자국주선주의 정책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글로벌 주도권을 놓고 각축장이 된 AI 분야의 경우 미국 빅테크(거대기술기업)가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정부의 ‘G3’(세계 3강) 목표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정보기술(IT) 업계 등에 따르면 유럽을 비롯해 해외시장에서 견제를 받고 있는 미국 빅테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 관점에 바탕을 둔 ‘친화 정책’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중 핵심은 각 국가의 규제장벽 철폐를 향한 압박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트럼프 당선인은 유럽연합(EU)이 미국 빅테크를 겨냥해 디지털서비스세(DST) 부과를 시사하자 즉각적인 상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U가 디지털시장법(DMA)을 통해 미 빅테크에 제재를 가할 경우 행정력을 동원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미국의 10대 무역적자국 중 하나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선 국내 민간 클라우드 시장의 약 80%를 점유한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의 경우 현재 국내 공공 클라우드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 공공기관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클라우드보안인증(CSAP)을 획득해야 하는데, 과거엔 철저한 망분리가 요구돼 해외에 서버가 있는 외산 클라우드가 이를 충족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2년 ‘각국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의 CSAP를 ‘미국 기업을 겨냥한 공공조달 무역장벽’으로 지적했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CSAP 규제 완화 요구를 포함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정부는 미국의 이 같은 기조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국내 민간 클라우드 시장을 AWS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 클라우드 시장마저 미국 빅테크에 내줄 경우 네이버와 SK텔레콤, KT 등 국내 사업자에 해가 될 우려가 크다.

 

스마트팩토리와 스마트 물류 등 IT 인프라를 제공하고 대행하는 시스템통합사업자(SI)와 시스템관리사업자(SM)의 경우에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AI 열풍으로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등 디지털전환(DX)으로 사업 분야를 전환하는 추세지만 주요 고객사인 제조, 수출업, 금융업이 악영향을 받을 경우 IT 서비스 투자 축소로 DX 전환 속도는 늦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와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막대한 지원과 투자를 진행 중인 AI 산업을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크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중심의 AI 개발과 AI 산업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쓸 것으로 전망되는데, 문제는 이런 정책의 수혜 대상이 ‘오직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기업 우선주의 원칙이 담긴 AI 행정명령을 1차 집권 시기인 2019년 2월 공표한 바 있다. 해당 행정명령은 미국의 AI 활용 역량 우위 확보를 위한 방안을 관련 기관이 모색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따라서 주도권을 가진 미국 빅테크에 중국과 EU가 큰 내수시장을 무기로 경쟁할 경우 AI G3를 향한 정부의 목표 달성 가능성은 희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연방방송통신위원회(FCC) 위원장에 빅테크 규제론자인 브렌던 카를 지명하면서 일부 국내 기업들에 긍정적인 면에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카는 구글과 넷플릭스 등 대량의 트래픽을 전송하는 빅테크가 인터넷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하던 인물로 국내 인터넷사업자(ISP)와 빅테크 간 망사용료 부과 문제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주요국 주도권 경쟁에서 열위를 면키 위해 한국이 AI기본법을 비롯해 국내 IT 육성 정책을 보다 공고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트럼프 2기 시대에 미국이 가장 힘을 실을 분야가 AI”라며 “결국 국내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 AI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AI기본법을 비롯해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는 규범 정립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AI 기술 개발을 위한 대정부 스킨십을 늘리는 한편 민관이 협력해 AI 기술 패권 경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호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으로 한국 정보통신기술 업계는 미국 규제와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망 무임승차 방지법 등 국내에서 논의 중인 법안들이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촉발할 수 있고 공공 클라우드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진입 제한과 CSAP 인증 요구 같은 문제도 쟁점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은 AI, 반도체, 디지털 플랫폼 등 주요 산업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고, 다각적인 국제 협력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는 치밀한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