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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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정우성 논란, 프랑스였다면…

최근 본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 도입 필요성을 설문조사 등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드러낸 기획(저출생 시대 ‘결혼 공포증’)을 5회에 걸쳐 보도했다. 기획을 두고 제기된 비판 중 하나는 결혼이 아닌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어떡할 거냐는 것이었다. 한 누리꾼은 기사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결혼 없이 아이를 낳는다고? 그럼 누가 책임질래.” 배우 정우성(51)과 모델 문가비(35) 혼외자 논란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씨가 양육비 지급을 약속하면서도 문씨와 결혼에 거부 의사를 표했다는 대목이 ‘무책임’하다는 식의 목소리가 크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지지 않은 두 성인을 ‘가족관계’로 인정하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팍스)을 취재하기 위해 안 솔라즈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 선임연구원을 9월 파리에서 만났다.

윤준호 디지털전략콘텐츠부 기자

제도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설명을 듣다, 결혼보다 해체가 쉽다는 점이 양육 회피 등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지 물었다. 그는 “부모 사이가 좋으면 당연히 아이에게도 좋겠지만, 사랑하지 않는 부부가 같이 사는 게 아이에게 좋을까”라고 반문했다. 팍스의 절반가량이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책임’이란 명목으로 지탱되는 결혼이 아이에게 좋을 리 없다는 설명이었다.

아이를 국가가 책임지는 나라에선 의아한 질문이기도 했을 테다. 프랑스에선 아기가 태어나면 전문 자격을 갖춘 인력이 있는 탁아소에 맡기거나 집으로 보모를 부를 수 있고 비용이 거의 무료에 가깝다. 3살부터 학교에 가는데 이는 의무교육이다. 아이를 부모에게만 맡겨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누리꾼의 댓글로 돌아와 보자. 댓글은 아이에 대한 책임이 결혼이라고 전제했다.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결혼으로 맺어진 부모 양측 없이 아이가 잘 자라기 어렵다는 ‘경험칙’의 기저에는 양육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맡겨져 있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에서 양육을 회피하는 이들이 많은 현실이 있다.

여성가족부 자료를 보면 2021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양육비 미지급으로 출국금지 등 제재 대상에 오른 이들 가운데 양육비를 지급한 사람은 24%에 그쳤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부가 내년 7월부터 한부모가족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비양육자로부터 나중에 받아내는 양육비 선지급제를 시행하겠다고 나섰지만, 회수 방안을 놓고 고심이 깊다. 양육비 선지급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제도’의 회수율이 지난해 6월 기준 17.2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우성과 문가비 혼외자 논란에서 공적 관심사가 될 부분은 세 가지다. 정씨가 양육비 지급을 이행할 것인지와 문씨와 그의 아기가 결함 없는 온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나아가 한국 사회가 부모와 상관없이 아이가 성년까지 잘 자랄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다. 양육비 지급을 공언한 정씨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집중해야 할 것은 남은 두 가지다.


윤준호 디지털전략콘텐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