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2차대전서 가자戰까지… 전쟁의 진화과정 신랄하게 분석

컨플릭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앤드루 로버츠/ 허승철·송승종 옮김/ 책과함께/ 3만8000원

 

전쟁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고 참혹한 후유증을 초래한다. 어떤 전쟁도 벌어져선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인류는 과거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수많은 전쟁이 준 교훈을 망각한 채 여전히 피의 역사를 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벌어진 국가 간 전면전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이 다 돼가고, 이어 터진 이스라엘과 하마스·헤즈볼라 간 전쟁도 살벌하게 진행됐다.

이 책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연합군을 지휘한 미국의 스타 장군 출신으로 저명한 군사전략가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와 영국 군사사학의 대가 앤드루 로버츠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가자 전쟁까지 약 80년에 이르는 전쟁의 진화 과정을 예리하게 분석한 결과물이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앤드루 로버츠/ 허승철·송승종 옮김/ 책과함께/ 3만8000원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맞붙은 중국의 국공내전을 시작으로, 강대국의 핵무기 개발로 ‘상호확증파괴’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제한전이 수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전쟁이 첫 장을 장식한다. 이어 필사적인 시민군이 5개국 연합군을 무찌른 이스라엘 독립전쟁, 중공군 교리에 영감 받은 베트민(베트남 공산 반군) 세력이 프랑스군을 압도한 디엔비엔푸 전투, 고전적인 기습 전쟁인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대리전의 전형을 보여준 엘살바도르 내전 등 전쟁의 진화를 보여주는 28개 현대전이 다뤄진다.

두 저자는 새로운 군사기술과 무기의 등장, 군사 훈련, 군사 교리, 음모, 동맹, 부사관의 역할, 정보 경쟁 등 전쟁의 결과를 좌우하는 모든 요소를 분석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전략의 특성을 도출해낸다. 이를 통해 최근 전쟁에서 지도자들이 간과한 것은 무엇인지 지적하고, 미래 전쟁의 양상을 예측해 향후 인류의 대응 방향을 통찰력 있게 제시한다.

예컨대 중국 국공내전에서 장제스, 한국전쟁의 맥아더,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및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 정부 등은 지도력이 실패한 사례로 거론된다. 이 전쟁들은 전쟁의 큰그림을 잘못 그리거나 현지 민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상대방 전력을 과소평가하는 등 지도력의 실패가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

미래 전쟁에 관한 대목도 흥미롭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개된 경제 제재, 소셜미디어 조작, 소비자 행동주의 등이나, 가자 전쟁에서 국제 여론 재판에서 참패한 이스라엘 상황 등은 미래의 전쟁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단초다. 일론 머스크가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저자들은 마크 저커버그(메타 창업자)나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 같은 거물들이 미래 전쟁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딥페이크, 슈퍼 컴퓨팅 등과 같은 첨단 기술로 인해 미래 전쟁은 우주나 가상 공간 같은 새로운 차원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책은 전쟁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안겨주는 동시에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진리를 다시 일깨운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