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영국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강력한 흡연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포르투갈, 캐나다 등에서도 강도 높은 금연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 하원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담배 및 전자담배 법안’에 대한 2차 독회에서 찬성 415표 대 반대 47표로 법안을 하원 심사의 다음단계로 넘겼다. 법안은 2009년 1월1일 출생자(현 15세)와 그 이후 출생자에게 담배를 판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각국서 강력한 금연 정책 등장…“담배 중독 개입 필요”
세계 최초로 담배 판매를 금지한 나라는 부탄이다. 부탄은 2004년 담배를 판매했다가 적발되면 상점은 영업 취소를 당하고 개인은 벌금이 부과되는 법을 시행했다. 2016년 투르크메니스탄도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대통령령으로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멕시코는 지난해부터 병원과 직장 등에 이어 공원, 해변 등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요 선진국들도 앞다퉈 강력한 금연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지난해 담배 판매 및 공공장소 흡연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법안에 따르면 술집이나 식당, 카페, 대학, 운동 경기장 등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금지되며, 2025년부터는 따로 허가를 받은 담배 가게와 공항 내 매장 외에는 담배를 팔 수 없다.
캐나다 정부도 2035년까지 ‘흡연율 5% 미만’을 목표로 담배 포장지뿐 아니라 담배 개비마다 건강 위험 경고 문구를 넣도록 강제하는 등의 금연 정책을 펴고 있다. 덴마크와 호주 등도 한층 강화된 금연 정책 도입을 추진 또는 검토하고 있다.
이같은 강력한 금연 정책은 흡연이 젊은 세대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 8만명을 넘어서고, 생산성과 비용 손실 등 경제적 피해도 연간 218억파운드에 달한다고 밝혔다. 웨스 스트리팅 보건 장관은 사람들의 건강 유지를 돕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영국 사회의 건강 악화 추세가 공공의료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압도하고 파산시킬 위험도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미성년자 수가 놀랄 만한 속도로 늘고 있어 긴급한 개입이 필요하다”며 “이 법안이 미성년자들에게 중독에 갇힌 삶을 피하도록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수 부족·서비스 업계 반발…‘금연 정책’ 경제 문제에 부딪히기도
한편 이 법안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수당 케미 베이드녹 대표는 산업 장관을 지내던 시기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추진됐을 때도 “국민이 생일 단 하루 차이로 평생 다른 권리를 갖게 된다”며 반대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당시 “(시가 애호가였던) 윈스턴 처칠의 당이 시가를 금지하다니 미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비스 업계의 반발로 영국 정부가 계획한 술집과 카페 밖에서의 흡연 금지 방안은 무산됐다. 영국 맥주·펍 협회는 이 계획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이미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술집 등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질랜드에서도 지난해 비슷한 정책을 추진했으나 폐기했다. 뉴질랜드의 경우 세수 부족 때문에 금연 정책을 폐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싱크탱크 뉴질랜드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담배로 얻는 세수는 전체 세수의 약 1.1%에 달한다. 니콜라 윌리스 뉴질랜드 재무장관은 담배로 인한 세수가 정부의 감세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담배 금지 요구 있었지만…헌재 “담배사업법 합헌”
한국에서는 2012년 헌법재판소에 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규정하고 있는 담배사업법에 대한 위헌 소송이 제기됐다. 사건을 청구한 폐암 환자와 임산부, 의료인 등은 “국가는 흡연 폐해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그런데도 담배사업법을 통해 담배 제조 및 판매를 허용·보장하는 것은 보건법과 행복추구권, 생명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담배사업법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담배와 폐암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거나, 흡연자 스스로 흡연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의존성이 높아서 국가가 개입해 담배의 제조 및 판매 자체를 금지해야만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담배사업법은 경고 문구 표시, 광고 제한 등을 통해 직접 흡연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