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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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집 줄게, 새집 다오?… 현실은 수억대 ‘분담금 폭탄’ [미드나잇 이슈]

1기 신도시 선도지구 발표되면서 기대감 높아져
업계에선 가구당 수억원씩 추가분담금 납부 예상
실제 사업 추진 땐 목돈 부담에 재건축 지연 ‘우려’

정부의 선도지구 발표를 계기로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에 대한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선도지구에 선정 단지는 벌써부터 호가를 올리겠다는 집주인들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추가분담금 규모가 커지면서 한바탕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번에 선도지구로 선정된 곳은 모두 13개구역으로, 총 3만6000가구 규모다. 선도지구는 안전진단 완화·면제,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상향, 인허가 통합심의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이를 토대로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시작한다는 게 정부의 선도지구 추진 목표다.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재건축현장 모습. 뉴시스

◆1기 신도시 집값 벌써 ‘들썩’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만큼 선도지구는 1기 신도시 중 가장 앞서 빠른 속도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선도지구 선정 소식과 거의 동시에 해당 단지들의 호가도 들썩이고 있다. 분당의 경우에는 호가가 최대 1억원까지 뛴 단지도 있고, 일산은 최소 1000만원 이상 호가가 올랐음에도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이는 기류다.

 

일산 백송마을(전용면적 84㎡)은 지난달 4억5000만∼4억9000만원(직거래 제외)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는데, 현재는 4억원대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강촌마을(84㎡)은 지난달 5억원 후반대부터 6억원 중반에서 매매계약이 성사됐지만, 최근 호가는 7억원에 육박한다.  

 

일산 마두동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선도지구 발표 전부터 매매 문의가 조금씩 늘어나다가 발표 당일에는 전화기가 하루종일 울렸다”며 “아직은 매수자보다는 매도자의 문의 전화가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상주 국토교통부 국토도시실장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선도지구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반면 선도지구에서 탈락한 단지는 집주인의 실망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선도지구에 관심이 쏠리는 만큼 일시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분당 서현동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기다리다가 지쳐서 못 버티겠다는 분들이 있어 일시적으로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다고 본다”며 “이번에 선도지구에서 빠졌다고 재건축을 안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떨어져도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셋값·부담금 등 결국 ‘돈문제’ 

 

정부가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지만, 업계에서는 높은 공사비와 이자 비용 등을 감안할 경우 재건축을 위해 가구당 수억원의 분담금을 내야할 것으로 보고 있다. 

 

1기 신도시의 각 단지마다 용적률과 사업 계획, 일반분양비율과 시세 등이 상이한 만큼 분담금 규모도 천차만별이다. 다만 재건축 이후 동일한 면적으로 입주하려면, 전용면적 84㎡ 기준 분당과 평촌은 가구당 1∼2억원, 일산·중동·산본은 3억원 이상씩 소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시범단지 현대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하나감정평가법인 오학우 평가사는 “재건축의 사업성은 결국 시세와 일반분양가에 달려 있는데 현재 공사비 등을 고려할 때 3.3㎡당 3500만∼4000만원은 돼야 재건축이 가능할 것”이라며 “분당 외에 평촌 정도는 괜찮겠지만 다른 신도시는 추가분담금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감정평가법인이 부천 중동신도시의 한 통합재건축 단지의 사업성을 분석한 결과, 조합원당 3억∼5억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비를 3.3㎡당 800만원으로 잡았음에도 전용면적 45㎡(기존 41㎡)에 입주할 때는 3억원, 84㎡(기존 동일)에 들어가려면 5억45000만원의 분담금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업비(철거비, 공사비, 설계비, 감리비 등)에 조합운영비, 기타 금융비용(세금, 보험료 등)이 합산된다. 재건축 이후에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 중 조합원 물량을 뺀 나머지를 일반분양을 통해 수익을 얻게 된다.

 

과거 부동산 호황기 때는 용적률이 낮은 구축 단지를 재건축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현금 보상이 돌아가기도 했다. 덤으로 구축이 신축으로 거듭나면서 기존 주택의 미래가치까지 높아지게 된다. 재건축 시장이 조합원에게는 ‘꿩 먹고 알 먹기’, 건설사에는 ‘땅 짚고 헤엄지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2006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주택시장 침체 등의 이유로 2013년부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유예됐고, 최근에는 초과이익 대신 조합원들이 추가로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재건축 사업이 불가능한 지경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급등한 데다 저금리 기조가 막을 내리면서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아졌다. 냉랭한 부동산 경기까지 겹치면서 사업성은 더욱 나빠졌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최고 입지의 서울 강남권 재개발 사업장조차 건설사들이 입찰에 나서지 않아 유찰되는 사례가 이어질 정도다.

 

전문가들도 구체적인 부담금 규모가 공개된 이후에 조합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재건축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991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의 세대주 상당수가 이미 경제활동을 끝낸 은퇴자여서 분담금으로 목돈을 내길 주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이 시작되면 집을 비우고 이주해야 하는 만큼 분담금 외에 전세자금 등 주거비용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별 조합원들의 자금여력이 중요하며, 사업 추진속도가 부촌 중심으로 두드러질 여지가 있다"며 "1기 신도시 초기부터 입주한 분들의 경제활동 전성기가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고 추가 분담금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