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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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임명한 감사원장까지 탄핵하겠다는 巨野, 정부 마비시킬 작정인가 [논설실의 관점]

공직 기강 무너지는 등 심각한 부작용 우려
대통령실 “헌법 질서 근간 훼손” 강력 비판
과반 다수 의석을 ‘힘자랑’에 남용해선 곤란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추진을 공식화했다. 얼마 전 끝난 감사원의 대통령 관저 관련 감사 결과가 이유라고 한다. 민주당은 “부실 감사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연관성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헌법상 ‘헌법 또는 법률 위반’으로 명시된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든다. 최 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이 지난 문재인정부 시절 공직 사회에서 저질러진 온갖 비리 의혹을 파헤치자, 원내 과반 다수당인 민주당이 정치 보복 차원에서 탄핵소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란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최 원장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1년 11월 감사원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회에 제출한 임명 동의 요청서에서 최 후보자를 일컬어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하고 신뢰받는 공직 사회를 구현해야 할 감사원장 적임자”라고 극찬했다. 국회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52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23표의 압도적 지지로 최 후보자의 감사원장 취임에 동의했다. 당시 원내 1당이자 과반 다수당인 민주당은 인사청문 보고서에서 “감사원장 직무를 무난히 수행할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3년 만에 최 원장을 퇴출해야 할 공직자 명단에 올린 민주당의 처사는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최 원장이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수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탄핵해야 한다면 먼저 그런 인사를 앉힌 점에 대한 반성과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재해 감사원장이 29일 국회 예결위 회의에 입장하며 탄핵 관련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왜 최 원장을 탄핵소추 표적으로 삼았는지 이유는 뻔하다. 현 정부가 대통령 관저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용산구 옛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옮기는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야권은 김 여사의 부당한 관여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감사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원장은 “최대한 조사를 했는데 연관성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꺼내 든 탄핵 사유에 대해 “잘 납득하기 어렵고 매우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이 원내 과반인 22대 국회 들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탄핵소추를 당하거나 탄핵 대상에 올랐는데, 그들의 생각도 최 원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170석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당론을 바꾸지 않는 한 최 원장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된다. 최 원장의 직무 수행이 중지되는 경우 문재인정부 시절 임명된 조은석(2025년 1월 임기 종료 예정), 김인회(2025년 12월 〃) 감사위원이 차례로 원장 권한대행을 맡을 예정이다. 민주당의 궁극적 목표가 감사원 장악이 아니라면 최 원장 탄핵소추 시도를 즉각 중단하는 것이 옳다. 대통령실이 “감사원의 헌법적 기능을 마비시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간다”고 밝힌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공직 사회 직무감찰이 주된 업무인 감사원이 수장 공백으로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여소야대 정국에서 가뜩이나 해이해진 공직 기강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감사원장 탄핵 추진은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비판을 새겨듣길 바란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거대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거나 탄핵 추진을 예고한 이들만 더해도 18명에 이른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 대응해야 할 김용현 국방부 장관조차 해당 명단에 포함돼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야당이 정권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탄핵을 남용하는 행태는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국민이 만들어준 다수 의석의 힘을 민생 입법이 아닌 정부 마비, 국가기관 마비에 악용한다면 민심의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