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4일 개봉하는 영화 ‘소방관’은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를 담았다.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안타까운 사건을 소재로 곽경택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화재현장의 무서움과 막막함에 대한 사실적 표현이다. 불이 난 건물 안은 검은 매연으로 칠흙같이 컴컴하고 사방에서 잡아먹을 듯이 불길이 타오른다. 남들은 한걸음에 도망칠 이 현장으로 소방관들은 몸을 던진다. 영화의 배경인 2000년대 초반에는 보호 장비조차 제대로 없었다. 목장갑에 방수복을 입고 화마와 싸워야 했다.
배우 주원은 이 화재현장을 처음 마주한 신입 구급대원 철웅을 연기했다. 철웅은 화재 진압 과정에서 선배들이 다치거나 숨지는 걸 보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성장하는 캐릭터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구하려는 팀장의 태도에 반발하지만 점점 소방관으로서 소명의식을 갖게 된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주원은 “사실 저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왜 몰랐지’하는 생각에 죄송하기도 했다”며 “‘정말 많이 잊히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다’ ‘이런 걸 좀 알려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소방관’의 화재 현장이 지극히 사실적인 이유는 컴퓨터 그래픽(CG)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불과 연기를 피워 촬영해서다. 주원은 “연기에 몰입하는 데 100%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처음엔 ‘어우 이렇게 불을 많이 지펴도 돼?’ 싶었어요.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뜨거웠어요. 이런 두려움이 철웅이 입장에서는 많이 도움된 것 같아요. (신입인) 철웅이 화재 현장에 처음 나가고 안타깝게도 방수차가 들어오지 못해 불길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투입됐을 때 극도로 긴장했을 것 같아요.”
주원은 “전 사실 CG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보다 완벽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CG 안 들어간 작품이 없지만 실제로 한 것보다는 리얼하지 않다. (곽경택) 감독님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아쉬운 점은 실제 화재현장의 무시무시함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 실제처럼 화재 현장에 연기를 채우니 아예 카메라에 배우들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치 앞도 안 보이고, 라이트를 켜도 시야가 딱 여기서 끝이 나는 게 실제 현장이라도 (소방관 분들이) 말씀하시더라”라며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화면에 하얗고 꺼멓고 밖에 안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그는 배우들보다 스태프가 더 걱정됐다고 한다. 주원은 “한 컷 끝날 때마다 스태프들이 쓴 하얀 마스크가 검은 마스크가 되는 걸 봐서 걱정이 많이 됐다”며 “컷 사인이 나자마자 현장에서 나와서 다들 맑은 공기를 마셨다. 함께하는 마음으로 이겨냈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배급 시사회로 영화 완성본을 본 후 “감독님이 기교 부리지 않은 게 이 영화에 어울린 것 같다”며 “보는 내내 그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슬퍼지리란 건 익히 예상했다. 다만 생각보다 영화 초반에 눈물이 터졌다. 그는 “선배 소방관이 숨지고 어머니가 화재 현장에 도시락 싸들고 왔을 때부터 (눈물이 흐르려 하는) 굉장한 위기에 봉착했다. 울컥울컥했다”며 “(시사회) 바로 다음에 기자님들을 만나야 돼서 꾸역꾸역 참고 있는데 이미 옆에서 다른 배우가 휴지를 나눠주고 있더라. 결국 휴지를 받아서 닦고 닦고 했다”고 회상했다.
2019년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주원은 이후 마음 가짐이 달라졌다고 한다. “너무 꽁꽁 싸매지 말자”는 생각이 생겼다.
“제가 I(내향적)라서 항상 작품을 고를 때나 홍보를 위해 예능에 나갈 때 뭔가 ‘덜컥덜컥’ 막히는 게 많이 있었거든요. 안전주의자다보니 예능에 나갈 때도 작품을 고를 때도 그랬어요. 이제는 그러지 말자. 정말 다양하게 하자. 그리고 멋진 것만 하지 말자. 요즘 그렇게 많이 변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신비주의도 있었지만 요즘 추세는 소통을 많이 하고 노출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역한 후로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많은 것들을 보여드리자, 다양한 것들을 해보자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