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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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법 개정 목청 높이더니… 野 “언제적 간첩 얘기냐” 돌변

민주, 간첩법 개정안 처리 지연 방침 논란

군 정보원 신상유출 등 안보 구멍
‘적국→외국’ 간첩 처벌 확대 골자

개정안 발의… 與 협조하라던 민주
“당내 이견” 지도부 논의조차 안해
“軍기밀은 다 국가기밀인가” 주장도

전문가 “기밀 유출사태 심각한데
‘레드콤플렉스’ 발목 잡아선 안돼”

올 한 해 초유의 군 정보요원 신상 유출 사태와 미 수미 테리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달 중국인 3명이 최소 2년간 군사시설을 500장 이상 불법 촬영하다가 부산에서 적발되면서 현행 형법 98조(간첩법) 개정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처럼 ‘적국’은 물론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단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들어 간첩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했고 더불어민주당 또한 관련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하며 적극성을 보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야당은 정작 간첩법 개정안이 지난달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를 통과하자 전체회의 상정 등 법안 처리 절차를 늦추기로 한 것으로 1일 전해졌다. “당 상층부의 뜻”이란 말이 흘러나온다. 일본의 전시 형법을 모방해 1953년 제정된 뒤 한 번도 고쳐지지 않은 구시대적 간첩법 조항 탓에 국가 안보상 허점이 드러났는데도 고치려 하지 않는단 것이다. 김용민 원내정책수석 부대표는 “간첩죄 관련해 당에서 공식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며 “법사위 절차에 따라 개정안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법사위 1소위 회의록엔 야당이 법 개정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발언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분위기는 서영교 의원이 주도했다. 그는 “언제 적 간첩인데 지금 간첩을 얘기하나”, “군사기밀은 다 국가기밀이냐” 등 날 선 반응을 쏟아냈다. 나아가 전현희 의원은 “검찰 특수활동비는 대외비라면서 (국회에) 제출 안 하는데 그건 국가기밀인가”라며 검찰을 향한 ‘적개심’을 간첩법 개정과 결부 짓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개정안이 1소위를 통과한 것만 해도 마치 기적 같다”고 했다.

 

김승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장이 지난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차 소위원회에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심사하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간첩법 개정을 꺼리고 있다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들려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원내 지도부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당내에 이견이 있어 당장은 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연내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의원들조차 이런 분위기 속 법안 처리를 주장하는 데 부담을 느낀 나머지 당의 전반적 기류에 편승해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 개정 시도는 21대 국회 때도 있었다. 개정안 4건 중 민주당 법안이 3건이었지만 1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7월 “민주당이 법 개정을 반대했었다”고 지적하자 민주당은 “사실 왜곡”이라고 반발했다. 그러고선 여당을 향해 “민주당의 간첩법 개정에 협조하라”고 했다. 22대 들어선 국민의힘이 개정안 12건, 민주당은 6건을 발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태세 전환에 지난달 27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이어 28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던 개정안은 발이 묶인 상태라고 한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법 개정 관련 공청회를 구상 중”이란 말이 나온다.

한 안보 전문가는 “외국 간첩에 의해 우리의 기밀정보가 반복적으로 유출되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는데 법 개정을 늦추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민주당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간첩 수사의 남용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개정안조차 과거의 ‘레드 콤플렉스’에 발목 잡힌 채 처리하지 않는 행태는 ‘안보엔 여야가 없다’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