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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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저축은행의 창단 첫 3연승 실패 이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

 

이 속담은 문제점이나 불가사의한 요소가 세부사항 속에 숨어있다는 의미다. 대충 보면 쉬워 보이는 것도 제대로 해내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한다는 뜻이다.

 

지난 1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페퍼저축은행과 흥국생명의 2024~2025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맞대결에서도 이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나와서 언급해본다.

 

이날 경기는 연승 행진을 벌이는 두 팀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흥국생명은 지난 10월19일 현대건설과의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지난달 28일 GS칼텍스전까지 개막 후 10경기를 모조리 이겼다. 풀세트 접전에 의한 승리도 단 1차례(11월12일 정관장전)에 불과할 정도로, 경기력이 좋든 좋지 않든 어떻게든 승리를 만들어내며 독주 태세를 갖췄다.

 

그에 비하면 페퍼저축은행의 연승은 다소 작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2연승. 그러나 페퍼저축은행에겐 창단 후 최다연승 기록이다. 이날 흥국생명을 이기면 창단 후 첫 3연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 직전 경기였던 지난달 27일, 개막 전만 해도 3강 후보로 평가받았던 정관장을 공수에서 압도하며 3-1로 승리했기에 그날의 경기력만 재현해낸다면 흥국생명의 개막 후 연승 행진을 막아설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결과는? 흥국생명의 세트 스코어 3-0(25-22 25-23 25-18) 완승이었다.

 

모든 지표가 흥국생명의 우세였다. 공격 득점 46-39, 공격 성공률 46%-37.86%, 블로킹 득점 7-3, 서브 득점 2-1, 리시브 효율 47.37%-26.56%까지. 페퍼저축은행이 앞섰던 것은 디그, 56-51 우세였다. 사실상 페퍼저축은행이 이길래야 이길 수 없던 경기였던 셈이다.

 

다만 페퍼저축은행도 1,2세트는 이길 기회는 분명 있었다. 1세트 9.52%라는 극악의 리시브 효율을 보였고, 흥국생명은 무려 66.67%의 리시브 효율을 보였지만, 두 팀의 공격 성공률은 35.14%로 동일했다. 그만큼 페퍼저축은행에겐 운이 따랐고, 흥국생명은 1세트만 해도 그리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21-21에서 정윤주의 퀵오픈을 이원정을 블로킹해내면서 22-21로 먼저 앞서 나간 페퍼저축은행이다.

 

정윤주의 퀵오픈 성공으로 22-22 동점이 된 상황. 페퍼저축은행이 빠르게 사이드 아웃에 성공했다면 1세트를 잡아낼 수도 있었지만, 여기에서 리시브가 발목을 잡았다. 흥국생명 원포인트 서버 김다솔의 까다로운 서브에 리시브가 흔들려 페퍼저축은행은 2연속으로 테일러의 평범한 연타성 백어택으로 공을 상대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고, 흥국생명은 투트쿠의 오픈 공격과 박정아의 공격을 피치가 블로킹해내면서 24-22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고, 또 한 번 투트쿠가 오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흥국생명이 기선을 제압했다.

 

2세트 패배는 더욱 뼈아팠다. 세트 초반 8-10으로 접전 양상으로 치러지던 상황. 정윤주의 퀵오픈을 이한비가 코트 가운데로 예쁘게 받아올려냈다. 모든 팀들은 두 번째 공 처리 원칙은 세터다. 세터 이원정은 이를 충분히 받아낼 위치에 있었음에도 옆의 장위도 공으로 달려드는 상황을 의식해 미뤄버렸고, 그대로 공은 코트에 떨어졌다. 그 순간 페퍼저축은행 장소연 감독의 표정은 일그러져버렸다. 강팀을 상대로는 공격이나 블로킹 등도 중요하지만, 연결 동작이나 어택 커버 등의 디테일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이러한 디테일에서 미흡한 장면이 나온 것이다.

 

그 다음 장면도 디테일 부족이 드러났다. 박정아의 퀵오픈이 투트쿠의 블로킹에 막혀 페퍼저축은행 코트로 떨어졌고, 세터 이원정이 이를 디그해냈다. 모든 팀들의 두 번째 공 처리 원칙 중 하나가 더 있다면 세터가 첫 번째 터치를 했을 경우엔 리베로나 미들 블로커가 두 번째 공을 처리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리베로 한다혜는 우물쭈물하다 이를 미숙하게 처리해버렸고, 한다혜가 받아올린 공은 네트를 넘어가 흥국생명 코트 밖으로 넘어가버렸다. 순식간에 점수는 12-8로 벌어졌다. 장소연 감독은 바로 타임을 불러 이원정에게 “그런 공은 네가 처리해야지”라며 주의를 주기도 했다.

 

두 번의 디테일이 아쉬운 플레이로 너무나 쉽게 점수를 헌납한 것은 세트 막판에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4~5점차 열세로 계속 이어지던 2세트는 세트 막판 급물살을 탔다. 21-16에서 투트쿠의 서브 범실, 장위의 서브 득점, 이한비의 퀵오픈, 투트쿠의 공격범실까지 연이어 터져나오며 21-20이 됐다.

 

다시금 흥국생명이 힘을 내 24-21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이날 V리그 입성 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테일러(17점, 공격 성공률 51.52%)의 연속 공격 성공으로 24-23, 1점차로 쫓아갔다.

 

다급해진 흥국생명은 이후 상황에서 김연경의 퀵오픈을 선택했고, 한다혜가 이를 받아냈다. 그러나 테일러의 두 번째 연결은 자신의 코트 위가 아닌 코트 밖이었다. 또 한 번 디테일에서의 아쉬움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그대로 2세트까지 내주고 말았다.

 

1,2세트를 모두 아쉽게 내준 페퍼저축은행에겐 3세트를 이겨낼 힘은 없었다. 3세트는 무난하게 밀리며 세트 스코어 0-3 셧아웃 패배를 받아들어야 했다.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은 패배로만 점철됐던 지난 세 시즌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공격이나 블로킹은 이제 여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접전 상황에서 ‘언니 구단’들을 이겨내기 위해선 연결 동작이나 어택 커버 등의 디테일 보완이 필요하다.

 

창단 첫 3연승에 실패한 페퍼저축은행이 다음 경기에서 곧바로 승리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페퍼저축은행의 다음 경기는 6일 GS칼텍스와의 광주 홈 경기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