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시기 군경 토벌 작전으로 희생당한 일가족 4명의 유족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73년 만에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광주지법 민사10단독 하종민 부장판사는 1951년 한국전쟁 시기 군경 학살 피해자 4명의 유족 19명이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4명 희생자별로 8000만원씩 위자료를 산정하고, 유족인 원고들에게 상속분별로 130여만~7150여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하 부장판사는 “한국전쟁 당시 경찰은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망인들을 살해해 헌법에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했고, 망인들과 그 유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재판 희생자들은 1951년 한국전쟁 시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통해 전남 영광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2022년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일가족이다.
한국전쟁 발발 28일 만인 1950년 7월 23일 전남 영광지역이 인민군에게 점령됐다.
경찰은 후퇴 직전 보도연맹원들을 살해했고, 지역을 점령한 인민군은 군수·읍장·은행장 등을 우익인사라고 처형했다.
좌익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군경이 수복 작전을 시작한 후 더욱 극심해졌다.
영광지역은 군경 수복이 늦어지면서 후퇴했던 좌익들이 다시 마을에 돌아와 군경가족·우익가족, 빨치산 비협조자 등을 또다시 살해하는 등 1950년 8~11월에만 350명이 희생된 것으로 진화위 조사 결과 확인됐다.
영광 지역이 희생이 큰 것은 지리적 요인이 배경이 됐다.
전남·북 지역 빨치산들이 여차하면 바다를 통해 탈출이 가능한 영광으로 몰리면서 좌익 세가 강해진 데다, 영광을 둘러싸고 있는 고창과 불갑산 지역 빨치산 토벌이 늦어졌다.
이에 11사단과 영광 경찰은 1951년 지역을 수복한 후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나섰다.
이번 사건 희생자인 장모(당시 35세) 씨는 누군가가 전해 준 “내일 전쟁 난다”는 말에 일가족을 데리고 불갑산 자락으로 피난에 나섰다.
다음 날 새벽 ‘불갑산 대보름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경찰의 토벌 작전이 시작되자 불갑산의 용천사 뒤 고랑으로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었다.
토벌대의 총격전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흩어졌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장씨와 그의 친모, 아내, 아들 등은 가까스로 총격을 피했으나 토벌 작전에 나선 경찰에게 붙잡혀 빨치산 또는 부역자로 몰려 별다른 조사도 없이 사살당했다.
이들 희생자는 살아남은 유족과 이웃 등의 증언으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