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생경한 평화
더없이 찬란한 자연의 풍경, 티 없이 매끈한 세계. 장종완(41)의 화면에 담긴 장면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믿기 어려운 거짓말 같다. 그곳을 무대 삼아 일어나는 사건의 면면에는 때로 가장 우스운 비극처럼, 또는 못내 불안한 희극처럼 평화를 가장한 긴장이 감돈다. 거짓 신화와 인조 털, 가짜 자연으로 짜깁기한 허구의 현실…. 문득 그 모든 것이 결국 우리에 관한 설명임을 깨닫는다. 평화를 위한 질서와 규칙, 희망을 위한 이념과 신앙에 기반해 세워진 이곳, 필연적으로 연극무대나 다름없는 인간세상을 은유하는 수사법임을 말이다.
장종완이 서울 용산구 소재의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선보인 개인전 ‘누아르 마운틴’이 11월24일 막을 내렸다. 작가가 거듭해 온 회화적 실험을 조망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로서, 지난 8년여간 제작한 회화, 조각, 설치, 영상작품을 다채롭게 소환하여 재구성했다. 오래된 가옥의 곳곳을 아우르는 전시장소 전체가 부조리극이 일어나는 무대로 연출됐다. 지상과 맞닿은 쇼윈도 공간에 선보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붉은 지붕 아래_유기농 시리얼 에디션’(2018/2024)은 없던 사실을 증언하는 다큐멘터리같이 어색한 움직임을 내비친다.
지상층의 구석진 벽면 높은 곳에 설치된 ‘구름이 웃어’(2021∼2024)는 낮말을 듣는 새 두 마리의 초상이다. 머리가 있을 자리에 사람의 귀가 달린 모양새로, 관습적 통념과 언어를 무너뜨리는 희극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원형 캔버스에 그린 ‘버섯 우유’(2024)의 화면에는 관객의 시선을 비스듬히 등진 젖소의 등에 새끼 호랑이와 어린 양, 새와 사마귀가 올라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생경하도록 아늑한 전경이 정치 및 종교 분야의 선전물을 연상시킨다. 젖소에게서 우유 대신 솟아난 붉은 광대버섯 두 송이를 조그만 다람쥐가 올려다본다. 다소 위험한 호기심으로, 맹목적인 믿음의 눈길로서다.
◆현실에 틈입한 이세계의 혼종들
온갖 요소가 기이하게 뒤엉켜 생성된 혼종들이 대사 없는 무대를 주도하는 배우들이다. 지하의 서늘한 방 안에 온통 파도치는 바다로만 이루어진 지구본 회화 ‘행성1’(2018)이 놓인 가운데, 가발을 쓴 회화 두 점이 공중으로부터 아래를 응시한다. 얼굴에는 각각 파도 위 흩날리는 지라시와 어둠 속 등대의 풍경을 담은 채다.
전시와 동명인 ‘누아르 마운틴’(2024)은 3D 프린터로 제작한 산 위에 장지를 배접하여 채색한 조각으로, 당나귀가 짐승의 생을 지나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능선마다 새겨 넣었다. 종교화의 형식을 빌려 정성껏 채색된 반인반수의 성상이 혼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둑한 복도 끝자락의 공중에는 거대한 낫과 나무 피리를 결합하여 만든 조각 ‘야마하하하’(2024)가 매달려 있다. 인조 풀을 몸처럼 입은 엄지손톱만 한 해골이 쇠붙이 언저리에 휘감긴다.
전시는 그간 작가가 사용해 오던 다수의 상징적 도상들을 낡은 집 안에 산발적으로 펼쳐 놓음으로써 저마다 다른 시기와 매체의 요소들이 서로 간 관계를 갱신하도록 유도했다. 캔버스 바깥으로 뛰쳐나온 입체적 사물이 자아내는 정서는 평면 위 유토피아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진짜 현실의 시공에 침투한 가짜들이 자신의 조악함과 생경함을 더욱 짙게 드러내는 한편 도리어 익숙하던 장소의 곳곳이 낯설어진다.
◆죽음 위에 덧입힌 생의 환영
선장이던 아버지가 온갖 나라에서 구해온 가죽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을 시작점 삼아, 장종완은 동물의 가죽 내피에 그린 회화 연작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정제된 죽음 위에 삶의 환상을 덧입히는 일이다. ‘묻어둔 편지’(2024)에서 끝내 사물이 된 생명의 살갗에 섬세한 붓으로 새긴 미래 낙원의 풍경은 마치 존재의 사라짐을 위로하는 그만의 제의 같다. 다시 이것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다. 약속된 죽음을 앞둔 삶들, 그 공허한 그림자를 외면하되 짤막한 생의 환영에 눈을 빛내는 애틋한 동물이 곧 우리이니까.
한편 그토록 덧없는 우리 인간은 애잔하게도 몸의 건강에 연연한다. 실내의 방 하나를 차지한 ‘건강한 회화’(2021∼2024)는 캔버스 표면에 한방침을 시술받은 모습이다. 회복실의 환자처럼 텅 빈 방의 좌대 위에 반듯이 누운 해당 작품은 ‘그는 무슨 일에나 부끄럼을 탄다’(2021)라는 제목으로 과거에 한 번 완성되었던 회화로, 이번 기회에 침을 맞고 더욱 건강해져서 개명했다.
옥상 야외공간의 작은 온실 속 바닥에는 ‘생존자’(2024)라는 제목의 작품을 뉘어 두었다. 성인 몸통 남짓한 크기의 하얀 인조모피에 실리콘 코와 귀 등 신체 일부의 모형을 얹어 둔 뒤 한방침을 놓아 완성한 설치작업이다. 실제 본인의 아픈 곳을 가늠하며 행했으니 일종의 자화상인 셈이다. 공터가 내다보이는 방향으로 높다랗게 걸어둔 서예 작품이 눈에 띈다. ‘울지마 바보야’. 애상일까 원망일까, 아니면 경고일까. 성공적인 생존을 위하여서는 언제나 울지 않는 편이 낫다.
장종완은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아마도예술공간(2024), 파운드리 서울(2023),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2020),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017), 금호미술관(2014), 스페이스 윌링앤딜링(2014)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광주파빌리온(2024), 아트선재센터(2024), 서울시립미술관(2024), 국립현대미술관(2023; 2019), 대전시립미술관(2023), 울산시립미술관(2022),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2), 대구미술관(2021), 부산현대미술관(2021), 서울시립미술관(2021) 등이 마련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