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10 총선 참패 후 국무총리를 비롯해 대대적인 개각을 공언했지만, 후임 총리 인선은 7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전임 대통령 때를 돌이켜봐도 총리 후임자 인물난으로 다시 유임되는 등 처음 겪어보는 문제가 아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인준이 필요하다는 조건과 함께 국회 인사청문회의 ‘신상털기’와 ‘망신주기’에 대한 기피 등으로 구인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총리는 통상적인 대통령제에선 존재하지 않는 특수한 직위다.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병행했지만 그간 총리가 국회의원이 아닌 경우도 많았고, 국회에서 인준은 하지만 선출하지 않는다는 점도 차이다.
그럼에도 총리직을 유지하는 건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어서다. ‘대독총리’나 ‘의전총리’라는 오명이 따라붙을 때도 있지만, 총리는 부통령이 없는 한국에서 대통령 유고시 권한대행을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직위다. 정치인 출신 대통령에겐 행정 경험이 많은 총리가 부족한 경험을 보완해줄 수 있고, 대형 사건사고나 정책 실패 때는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적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자리다.
총리는 명예직에 불과할까. 우리 헌법은 총리와 관련해 분권과 책임총리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국무위원(장관)에 대한 제청권, 행정 각부에 대한 통할의 권한과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의 중요한 결정이나 인사 등은 대통령 단독 결재가 아니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처리해야 한다. 국무회의 의결정족수는 3분의 2이므로, 총리가 절반 정도의 제청권만 행사한다고 가정해도 상당한 수준의 의사결정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총리 임면권을 대통령이 임의적으로 행사하다 보니 총리가 소신껏 일할 구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취지의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런데, 개헌은 가능할까. 개헌을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총리선출제’ 도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총리의 약한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시도지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던 시절엔 이들이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지만, 직선제 도입 후 서울시장을 비롯한 시도지사들은 소신껏,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누가 총리를 선출해야 할까. 여당의 의원총회나 여야 합의를 통해, 또는 별도 추천위원회를 꾸려서 선출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지금도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등은 법률에 추천위원회 구성과 자격 요건 등이 규정돼 있다. 경찰청장이나 검찰총장 후보자 등도 추천위원회를 거쳐 내정된다. 요식행위가 아니냐고 따질 수 있겠으나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등은 3권 분립에 의해, 일정한 자격 요건을 부여하는 절차에 따라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다. 대통령선거 때 총리 후보를 미리 확정해 공개하면 사실상 ‘러닝메이트제’를 개헌 없이 도입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그동안 정권을 막론하고 분권형 정부나 책임총리제로의 정치개혁을 수없이 외쳤다. 대선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으나, 결국 실현되진 못했다. 총리선출제를 도입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행사를 통해 책임행정과 분권이 가능해질 것이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전 서울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