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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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인’ 눈총 말고 연금·정년연장 사회적 합의 나서야” [연중기획-소멸위기 대한민국, 미래전략 세우자]

불붙는 ‘노인 연령 상향’ 논의

“71.6세는 돼야 노인”… 3년 새 1.1세↑
경로우대기준 65세와 간극 더 벌어져

2050년 젊은이 1명이 노인 1명 부양
초고령사회 눈앞… 연령 재정립 필요

복지 축소→노인빈곤율 심화 우려도
“제도적 보완없이 연령만 상향 안 돼”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향의 필요성은 있으나 복지 혜택 축소 등 우려를 점검해야 하고, 정년을 포함한 여타 제도와 함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최상수 기자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이 생각하는 노인 연령은 평균 71.6세다. 복지부가 10월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직전 조사인 2020년 당시 해당 질문의 평균 나이는 70.5세였다. 3년 사이 1.1세 상향된 것이다. 현행 이동통신비 감면, 지하철 무임승차 등의 기준이 되는 노인 연령 65세와 간극은 더 벌어졌다.

 

사실 노인 연령을 명시한 법은 없다.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할 때 경로우대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정했을 뿐인데, 이게 노인 연령으로 굳어졌다.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 보니 경우에 따라 60세 이상이거나 55세를 기준으로 한 정부 사업도 많다. 일례로 노인복지주택 자격, 치매관리법에 따른 치매 검진 등 기준 나이는 60세 이상이며, 교통안전 의무교육 대상자는 75세 이상이다.

 

◆고령 퇴직자, 73.3세까지 근속 원해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와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일례로 법 제정 당시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82.7세가 됐다.

일하는 고령층이 늘어나는 경향도 노인 연령 상향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6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27만2000명 증가한 674만90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60세 이상 취업자 비중(23.4%)도 50대 취업자(23.3%)를 처음 넘어서며 전체 연령대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 비중은 2021년 5월(20.2%) 20%를 처음 돌파한 뒤 등락을 거듭하다가 올해 5월(23.1%) 23%를 넘었고 9월에 더 높아졌다.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고령층도 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5월 기준 전국 고령층(55~79세) 인구는 1598만3000명인데 이 중 69.4%(1109만3000명)는 ‘장래에도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처럼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과 지금은 일이 없지만 앞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을 모두 포함한 규모다. 지난해(68.5%)와 비교하면 0.9%포인트 상승했다. 장래 근로를 희망하는 고령층 인구는 평균 73.3세까지 일하기를 원했다. 이 역시 지난해(73.0세)보다 0.3세 높아졌다.

복지에 투입되는 재정 문제도 노인 연령 상향의 근거다. 한국은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경제활동인구가 많아 복지가 유지됐지만, 저출생 고령화로 향후 젊은 세대의 부양 부담은 더 심화하게 돼 있다.

부영그룹 회장인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이 10월 취임 일성에서 노인 연령을 75세로 올리자고 주장한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현재 1000만명인 노인 인구가 2050년에는 20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0%에 달한다”며 “나머지 인구 3000만명 중 20세 이하 1000만명을 제외한 2000만명이 2000만 노인의 복지에 치중하다 보면 생산인구가 부족하게 된다”고 했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2050년에 20세 이상∼64세 이하 인구는 2309만명, 65세 이상은 1891만명이다. 이 회장의 주장보다는 생산인구가 다소 더 많고 고령층은 적지만 큰 틀에서 부양인구가 대폭 늘어나는 것은 같다.

 

◆“정년 연장 등과 같이 논의해야”

노인 연령 상향에 대한 필요성은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 2019년 1월에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평균적으로 (대상 노인을) 65세로, 일부 법에서는 60세로 규정하는 등 일반 인식보다 연령이 낮게 설정돼 있다”며 기준을 바꿀 필요성을 밝혔다. 지난해에도 서울교통공사 적자의 30%가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령 기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논의가 무르익었다고 진단한다. 다만 경로우대 대상이 되는 연령만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정년 연장, 국민연금 수급 등 여타 제도와 함께 조정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인 연령 상향이라는 단일 문제만 다뤄질 경우 복지 축소로 이어져 안 그래도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가 심화할 수 있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다른 제도는 변동이 없는 상태로 노인 연령만 상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노인회장의 발언은 정부의 사회보장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관점의 접근법으로, 결국 정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준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여타 연금 제도 등으로 준비가 된 상태에서 노인 연령을 높여야 마땅하며, 제도적 보완 장치 없이 연령만 높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대한노인회장의 일성은 노인 연령 상향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며 “다만 ‘지하철 무임승차’ 등 단일 이슈로만 소비돼서는 안 되며, 정년 연장 및 국민연금 등 여러 문제와 맞물려 가야 한다”고 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