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던 제시 린가드(FC서울)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다. 스테판 무고사(인천 유나이티드)는 15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리그를 폭격했다. 지난 시즌 득점왕 주민규(울산 HD) 발끝은 여전히 매서웠고, 이승우(전북 현대)는 후반기 맹활약을 앞세워 팀을 최하위 위기에서 건져냈다.
이렇게 올 시즌 K리그1을 수놓은 수많은 공격수 중에서도 가장 찬란했던 별인 리그 ‘베스트11’ 공격수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동경(김천 상무)과 이상헌(강원FC)이다. 특히 이상헌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K리그2에서 5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던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다. 이상헌은 “이름도 없는 선수가 큰 상을 받게 된 건 윤정환 강원FC 감독님을 만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상헌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K리그 시상식에서 “윤 감독님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 윤 감독님이 손을 내밀어 줬다”고 말했다.
축구 명문 울산 현대고에서 공을 차던 이상헌은 2017시즌을 앞두고 울산 현대(현 울산 HD)에 입단한다. 당시 팀을 이끌던 윤 감독이 이상헌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1년 뒤인 2018년 윤 감독이 J리그 세레소 오사카 지휘봉을 잡게 됐고, 이상헌은 묻히고 말았다. 5년간 K리그1에서 2020시즌까지 전남 드래곤즈와 울산을 오갔다. 이 기간 7골 2도움으로 아쉬웠던 이상헌은 2021시즌 부산 아이파크에서 2부 생활을 시작했지만 3시즌 동안 10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재능을 피우지 못했다.
J리그에서 감독상까지 받은 윤 감독은 2023시즌 중반 ‘위기의 팀을 구하라’는 특명과 함께 강원 지휘봉을 최용수 전 감독에게 넘겨받는다. 이 시즌 강원은 승강 플레이오프(PO) 끝에 살아남았고, 윤 감독은 새 시즌을 앞두고 이상헌을 부른다. 윤 감독은 “이 정도로 못하고 있을 애는 아니었고, 분명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선수여서 데려온 것”이라며 “잠재력이 충분해서 분명 잘해낼 거라고 믿었다”고 돌아봤다.
이상헌은 시즌 초반부터 기대에 부응했다. 개막전 축포를 쏘아 올리더니 팀이 치른 6경기에서 7골을 몰아넣으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상헌은 “내 골로 팀이 승리한 경기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게 에이스’라고 칭찬해 줬던 게 기억난다”며 “내가 뛰어보고 싶었던 포지션에서 다 역할을 해볼 수 있게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헌은 이후 침체기를 맞는다. 팀이 이후 치른 10경기에서 단 1골을 기록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때 이상헌은 윤 감독의 조언을 떠올렸다. 이상헌은 “감독님께서 득점 욕심을 내기보다 패스를 좀 해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며 “그 이후로 이름 없는 선수였던 제가 조금 달라진 거 같다”고 돌아봤다. 윤 감독은 이에 “이름이 없긴 왜 없어, 기회가 부족했지”라며 “니가 있어서 지금 다른 선수들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응원했다. 이어 “도움을 기록할 줄 알아야 골도 더 꽂을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던 것”이라며 “대단한 건 어시스트를 하라니까 곧바로 어시스트를 해냈다”고 칭찬했다.
올 시즌 이상헌은 13골 6도움으로 19개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이상헌은 “정말 열심히 뛰었던 시즌이어서 일단 80점 정도 주고 싶다”며 “일단 푹 쉬고 다음 시즌 목표를 설정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감독과 이상헌 인연은 다시 끊길 위기에 놓였다. 윤 감독은 성적이 난 만큼 합당한 대우를 원하고 있지만 시민구단 강원은 재정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강원 관계자는 “윤 감독과 협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