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주미대사관 ‘트럼프 라인’ 로비업체 계약… 연결고리 강화 [국내외 경제 위기 경보]

접촉면 늘리기 동분서주

2기 행정부 비서실장 내정 와일스
임명 전까지 일했던 ‘머큐리’ 고용
“전략 컨설팅·로비·공보 등 서비스”

기업들도 현지 컨설팅사 등 계약
트럼프와 인연 전문가 영입 나서
총수들도 인맥 활용 발빠른 행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과 접촉을 강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 대선에 나섰던 2016년 ‘워싱턴 늪의 고인 물을 빼라’(drain the swamp)고 외치며 워싱턴의 로비 문화를 겨냥했지만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그의 측근들이 관련된 로비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로비업체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는 지난달 26일 주미한국대사관과 계약 체결 사실을 법무부에 신고했다. 미국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외국 정부를 위해 로비 활동을 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지만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법무부에 등록하고 관련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트럼프 2기 대비 ‘만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로비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가운데 주미한국대사관이 지난달 26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 수지 와일스(왼쪽 사진)와 관계가 있는 로비업체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머큐리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맞춰 대사관의 경제 정책 의제를 개발·조직·계획하는 것에 관련된 자문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오른쪽 사진은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 홈페이지에 게재된 업체 소개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정부, 정당 등에 결실을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다. AP연합뉴스·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 캡처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달 7일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한 수지 와일스 전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관계가 있는 로비업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와일스는 2022년부터 머큐리에서 일했으며 비서실장으로 임명되고 난 뒤 회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머큐리의 현직 파트너인 브라이언 란자 역시 대선 캠프의 선임 고문이며 공화당 내 전략가다. 법무부 신고 내용을 보면 머큐리는 주미대사관에 △전략 컨설팅, 로비, 공보, 미국 당국자 아웃리치(접촉)를 포함한 대(對)정부 관계 △대사관의 경제 정책 현안을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맞춰 개발, 조직, 계획하는 것과 관련한 자문 △대사관 지도부를 행정부에서 보직을 맡을 수 있는 트럼프 정권 인수팀 주요 이해 관계자에 소개 △트럼프 정권 인수팀 관료들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기회 식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계약 기간은 지난달 18일부터 올해 말까지이며 총 4만달러(약 5612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들도 트럼프 2기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국내 일부 기업은 최근 워싱턴의 정치 및 전략 컨설팅사인 ‘아메리칸 글로벌 스트래티지스(AGS)’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AGS는 트럼프 1기 핵심 참모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렉산더 그레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이 설립했으며 트럼프 1기에서 북핵 협상 실무자로 활약했던 앨리슨 후커 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이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호세 무뇨스를 내정한 것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관련 있는 행보다. 무뇨스 신임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부터 현대차 북미 활동을 총괄했다. 현대자동차는 대외협력·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 홍보·PR 등을 총괄하는 그룹 싱크탱크 수장에는 공화·민주 양쪽에 발이 넓은 전 주한미국대사 성 김 현대차 고문역을 내정했다.

 

SK그룹은 올 초 미국에 세운 대외협력법인 ‘SK아메리카스’의 부사장으로 전 미 상원 재정위원회 국제무역 고문이자 미 무역대표부(USTR) 부비서실장을 지낸 통상전문가 폴 딜레이니를 지난 7월 영입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USTR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뉴시스

트럼프 당선인의 당선 이전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 등으로 미국 내 정·관계 움직임이 기업들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대관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진행돼왔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2년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를 영입해 북미 지역 대외업무 총괄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민주·공화당을 막론하고 미 정계와 국방부에 인맥이 넓은 인사다. 삼성은 또 최근 인사에서 북미 시장 경험이 많은 한진만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미주총괄(DSA)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장으로 전진배치하기도 했다. LG는 2022년 워싱턴사무소장에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 차장을 지낸 조 헤이긴을 영입했다.

 

그룹 회장들의 행보도 빨라졌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한화·한화솔루션·한화시스템·한화비전에 이어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에도 올랐다. 김 회장은 재계 대표적인 트럼프·공화당 인맥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명의로 트럼프 당선인에 축하 서한을 보냈다. 또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플래시 메모리 자회사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미국 사업 챙기기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차량용 반도체 협력을 논의하는 등 연이 닿아 있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로비업체들이 집결해 있는 워싱턴 K 스트리트는 차기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에 나서는 각국 기업들로 문전성시를 누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던 2016년 워싱턴의 로비문화를 비판했지만 결국 본인이 로비 산업을 성장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매체는 지적했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이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