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여론에도 야욕을 숨기지 않고 4선에 도전하는 정몽규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일까, 2010 남아공 월드컵서 최초로 원정 16강을 일군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일까. 아니면 “골이에요”라고 외치던 ‘국민 해설가’ 신문선 명지대학교 스포츠기록분석학과 초빙교수일까. 12년 만에 대한축구협회장 자리를 놓고 펼쳐지는 경선에서 치열한 ‘3파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 2013년 첫 선출 이후 10년 넘게 ‘축구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 회장은 4선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 회장은 지난 2일 축구협회에 후보자 등록 의사 표명서를 제출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도 연임 심사서를 내며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회원종목단체 임원은 한 차례만 연임이 가능하다. 다만 재정 기여나 주요 국제대회에서의 성적, 단체 평가 등에서 성과가 있을 경우 3선 이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앞서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체육회 공정위로부터 3선 연임 도전 승인을 받은 만큼 정 회장의 4선 도전 승인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 회장은 거센 비난에도 도전을 강행했다. 올해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에 이어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홍 감독 선임 여파로 문화체육관광부 감사를 받고 국회 국정 감사에 출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 회장은 지난해엔 승부조작 등으로 제명된 축구인들을 사면하려다 역풍을 맞고 철회하기도 했다. 출마를 고심하던 정 회장은 무엇보다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서게 됐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는 허정무 전 감독이 꼽힌다. 허 전 감독은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전설’ 허 전 감독은 은퇴 후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성과를 냈다. 이후에는 축구협회 부회장,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프로축구 대전 이사장으로 행정가의 길을 걸었다. 허 전 감독은 정 회장을 향해 “독선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이다. 4선 도전 자체로 축구계의 큰 불행”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허 전 감독과 정 회장은 지난달 30일 포항과 울산 HD의 코리아컵 결승전이 펼쳐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두 후보 중엔 이미 축구계를 휘어잡은 정 회장이 우위에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업 총수로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정 회장은 지난주 시도협회장, 연맹 단체장들을 만나 지지 기반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와 지도자, 행정가까지 두루 경험한 허 전 감독은 상대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밑바탕 되어야 하는 축구협회를 이끌 리더십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따른다. 출마 기자회견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여기에 신문선 교수가 출마 의사를 밝혀 선거판에 또 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신 교수는 3일 선언문을 통해 “축구협회는 변해야 한다. 재벌 총수가 행정을 하는 시대는 정몽규 집행부가 마지막이어야 한다”며 “일하는 CEO가 되겠다”고 밝혔다. 1983년 유공 축구단 입단해 세 시즌만 뛴 뒤 현역에서 은퇴한 신 교수는 1986년부터 방송 해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2014년에는 성남FC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2017년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다만 신 교수는 허 전 감독과 단일화 가능성도 열어놨다. 신 교수는 이날 “단일화라는 건 축구의 행정적인 철학이 맞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내가 고민하겠다”며 “다소 생각의 차이가 있더라도, 선거는 결국 표로 판가름난다. 단일화를 하는 게 재벌 총수가 축구협회장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극한 상황이라면, 유연성을 갖고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축구협회장 선거는 내년 1월8일 열린다. 이달 25~27일 후보 등록이 진행된다. 선거인단은 시도협회 대표, 전국 연맹, K리그1 12팀 대표 등으로 구성된 대의원을 비롯해 고등 및 대학 선수, K3·K4 및 WK리그 선수, K리그1·2 선수, 축구 동호인 선수, 아마추어 및 프로팀 지도자, 심판 등 약 200명에 이른다. 추락한 한국 축구의 다음 4년은 이들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