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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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도전·가족의 의미… 겨울을 달구다

휴먼드라마 세 편 잇따라 개봉

곽경택 감독 ‘소방관’
2001년 홍제동 방화 참사 실화 소재
참혹한 화재 속 소방관 악전고투 담아

신연식 감독 ‘1승’
만년 꼴찌 女배구팀 성장·승리 그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 묘사 눈길

양우석 감독 ‘대가족’
할아버지·손주 사이 에피소드 중심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 등 다뤄 눈길

‘위키드’ ‘모아나2’ 등 할리우드 대작이 점령한 극장가에 한국영화 세 편이 출사표를 낸다. 판타지 요소가 강한 해외 대작들과 달리 세 편 모두 휴먼드라마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4일 개봉하는 ‘소방관’은 2001년 홍제동 방화 참사를 소재로 소방관들의 희생정신을 담았다. 같은 날 관객을 찾는 ‘1승’은 만년 꼴찌 배구 선수들의 도전과 성장을 그렸다. 11일 개봉하는 ‘대가족’은 3대에 걸친 한 가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6명 순직 홍제동 방화 참사 영화로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은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 벌이는 사투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영화는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방화 사건을 소재로 했다. 방화범이던 집주인 아들을 구하려다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사건이다. 구체적 인물과 이야기는 영화에 맞게 바꿨다.

중심인물은 신입 소방관 철웅과 베테랑 구조반장이다. 첫 구조현장에서 실수를 연발한 철웅은 화재 진압 과정에서 동료가 목숨을 잃자 트라우마를 겪는다. “소방관은 요구조자(구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 목숨 구하기 위해 내 목숨 바칠 각오 없으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하는 반장도 무모해 보인다. 이런 철웅이 동료들을 보며 진정한 소방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영화의 뼈대다.

 

‘소방관’은 화재 현장의 공포와 막막함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컴퓨터그래픽(CG)을 최소화하고 실제 불을 피웠다. 화마에 휩싸인 건물 안은 매연으로 칠흑같이 컴컴하고 불길은 사방에서 잡아먹을 듯이 타오른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몸 사리지 않고 인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노고가 숭고하게 다가온다. 배우 주원은 “실제 화재현장처럼 연기를 채우니 아예 카메라에 배우들이 나오지 않았다”며 “마음 같아서는 한 치 앞도 안 보일 만큼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화면에 하얗고 꺼멓고밖에 안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2000년대 초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를 잘 보여준다. 불법주차된 차량으로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가운데 이들은 방수복에 목장갑만 끼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다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약하다. 인물들도 입체적이지 못하다. 곽 감독은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기리는 만큼, 재주나 테크닉보다는 치열함과 진정함으로 승부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우 곽도원, 주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이준혁 등이 출연한다.

 

◆사소한 1승, 누군가에겐 우주적 순간

신연식 감독의 ‘1승’은 희망도 투지도 없는 여자배구팀 핑크스톰이 단 한 번의 승리를 쟁취해내는 내용이다. 작품의 얼개가 공개됐을 때부터 온라인에서는 ‘이미 영화 한 편 다 본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눈물과 환희로 버무린 또 한 편의 인간승리 드라마겠거니 짐작했다.

영화는 예상을 비껴간다. 쉼 없이 코트를 탕탕 때리는 배구공의 파열음처럼 힘차고 경쾌하다. 주인공인 배구 감독 김우진은 평생이 파직·파면으로 점철됐다. 손대는 팀마다 망해 지도자 생활 승률이 10%도 안 된다. 철없는 재벌가 자제인 정원은 무슨 생각인지 답 없는 핑크스톰을 인수하고, 역시 답 없는 정원을 감독으로 앉힌다. 그리곤 핑크스톰이 한 번이라도 이기면 팬들에게 20억원을 경품으로 주겠다고 공약한다.

 

각본도 함께 쓴 신 감독은 맛깔나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능하다. 주인공 우진은 ‘꼰대’처럼 쉼 없이 잔소리하고 남 탓하며 적당히 일하는 중년남이다. 배우 송강호는 이런 우진을 밉기보다 정감 있게 살려낸다. 박정민이 연기하는 구단주도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무엇보다 경기 장면의 박진감이 영화에 힘을 더한다. 0.5초 만에 공이 오가고 몸이 반응해야 하는 배구의 묘미를 실제 경기를 보듯 카메라에 담았다. ‘배구 여제’ 김연경과 김세진, 신진식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태만하던 우진이 승부욕을 불태우는 계기나, 평생의 무능에서 벗어나 전술·전략에 능해지는 모습은 설득력과 개연성이 약하다. 영화가 이런 대목에 시간을 끌지 않고 배구경기에 집중한 건 좋은 선택 같다.

신 감독은 ‘1승’을 구상한 배경에 대해 “어릴 때는 나이 먹으면 누구나 당연히 결혼하고 직장을 갖고 집·차를 사는 줄 알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일상처럼 보이는 이 삶이 하루하루 엄청난 투쟁의 결과란 걸 점점 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며 “남들에게 사소하게 지나가는 순간도 누군가에게는 우주와 같고, 그걸 쟁취하기 위해 정말 죽을 힘을 다한다는 걸 영화로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피를 나눠야 가족일까

양우석 감독이 연출한 영화 ‘대가족’은 서울 시내에 건물 몇 채를 가진 알부자 무옥의 가족을 들여다본다. 이북식 만둣집으로 크게 성공한 무옥은 평생 써도 남을 재산을 모았지만 가문의 대가 끊길 것 같아 걱정이다. 외아들 문석이 의대를 다니다 갑작스레 출가해 승려가 된 탓이다. 어느 날 무옥에게 손주라고 주장하는 어린 남매가 찾아온다. 그의 아들이 대학 시절 기증한 정자로 태어났다는 것.

11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무옥이 손주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김윤석이 할아버지 무옥을 연기했다.

 

‘변호인’(2013), ‘강철비’(2017) 등을 선보인 양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처음 가족 드라마에 도전했다. 그는 “지난 한두 세대에 걸쳐 가족의 형태와 의미가 굉장히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면들이 영화로는 잘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 ‘대가족’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