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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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쇼 피해 연간 4조5000억, 엄벌·근절해야 할 사회적 악폐다

최근 군 간부를 사칭해 부대 인근 식당에서 대규모 주문을 하고 잠적하거나 돈을 가로채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어제 군 간부를 사칭한 노쇼(No-Show, 예약부도) 피해가 전국적으로 76건 확인돼 광역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충북 충주에서는 한 달 사이 5개 식당에서 노쇼 피해가 발생했다. 김 중사라는 인물이 50인분의 단체 음식을 포장 예약하고 나타나지 않아 식당마다 40만∼50만원 손해를 입었다. 지난 13일과 15일에도 각각 인천의 여러 식당과 서울의 카페에서 비슷한 방식의 군 사칭 피해가 발생했다. 심지어 부대 명의의 위조 확약서를 보내주고 내부 사정을 이유로 들며 전투식량·식자재 대리 구매를 요청한 후 업주로부터 돈을 송금받고 잠적하는 경우까지 벌어졌다. 노쇼 행위를 엄벌하고 소상공인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음식점·미용실 등 5대 서비스 업종의 연간 노쇼 매출 손실액은 4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로 인한 고용 손실도 연간 10만8000명에 달한다. 노쇼율은 음식점 20%, 병원 18%, 미용실 15%, 고속버스 11.7%, 소규모 공연장 10% 등 업종별로 차이가 있지만, 예약시간을 비워두고 식재료를 모두 버려야 하는 외식업계 피해가 가장 크다. 노쇼는 영세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질범죄다. 우리 사회의 신뢰와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처벌 조항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현행법상 노쇼 행위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문제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민사소송을 제기하기엔 소송 비용이 더 든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2018∼2021년 노쇼 분쟁 281건 가운데 사업자가 구제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유명 식당과 달리 소규모 식당은 예약 보증금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제 민생토론회에서 “(노쇼 피해를 막기 위해) 소비자·판매자 모두 공감하는 예약 보증금제를 마련하고, 분쟁 해결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말에 그쳐선 안 된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엔 노쇼로 인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대기엔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 실효적인 근절책을 마련하고 소상공인의 피해를 일정 부분 보상하는 법제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