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美 한국산 HBM 대중 수출 통제, 반도체 지원 속도 내야

추가 제재에 美 기술 사용 제품 포함
中 수출 20% 비중 삼성 피해 우려도
면제국 지위 확보·특별법 통과 시급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미 상무부는 2일 HBM과 첨단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추가제재안을 발표했다. 미국산뿐 아니라 외국제품도 미국의 기술이 조금이라도 쓰였다면 수출통제대상에 포함된다. 당장 세계 HBM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그동안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대중 수출을 차단해 왔다. 이번에는 이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 유입까지 막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AI 반도체 굴기를 봉쇄하려는 미국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현재 세계 HBM 시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95%가량 차지하고 있다. 외신에서는 올 상반기 삼성전자 HBM 매출 중 약 20%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정부는 “SK는 HBM 대부분을 미국에 공급하고 삼성도 매출비중이 낮다”며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고 했지만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니다.

 

미국의 이번 조치에서 주요 반도체 장비 수출국인 일본과 네덜란드 등 33개국은 빠졌다. 자국 기업의 반도체 수출을 미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제한했거나 반도체 장비와 관련이 낮기 때문인데 한국이 면제국 명단에서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과 협의했다고 했지만 공허하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수출통제 제도를 정비해 면제국 지위를 얻는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미·중 간 반도체 등 첨단기술패권 경쟁은 갈수록 격화될 게 틀림없다. 중국 정부는 즉각 자국산 갈륨, 게르마늄 등 민간·군수용도 품목의 대미수출을 금지하며 맞불을 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국가전략산업의 대중 수출을 전면 통제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우리나라 수출의 40%나 차지하는 미·중 간 갈등은 국내 산업과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다.

 

사정이 이리 긴박한데도 정치권은 아랑곳없다. 여당이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제 예외를 인정하고 보조금 지급도 가능한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거대 야당의 몽니로 표류하고 있다.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조차 AI 시대에 제때 적응하지 못해 위기론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을 접고 반도체특별법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